한국일보

고려의 마지막 왕이자 조선의 건국 아버지 이성계

2020-10-1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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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퓰리처상 수상자 강형원 기자의 한민족의 찬란한 문화유산 (12) 이성계

고려의 마지막 왕이자 조선의 건국 아버지 이성계

우리 민족에 천년 이상 뿌리를 내린 불교는 고려의 국교였고 태조 이성계도 불교 신봉자였지만,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면서 불교의 목을 쳤다. 조선시대의 배불정책은 부처님 석상 파괴와 사찰 토지 몰수, 승려들의 도성 출입금지 등 불교 탄압으로 이어졌다. 경주국립박물관에 모셔놓은 머리 없는 부처 석상들.

고려의 마지막 왕이자 조선의 건국 아버지 이성계
고려의 마지막 왕이자 조선의 건국 아버지 이성계

고려장수 이성계가 꿈속에서 산신으로부터 금척을 받을 때 본 마이산. 고려 땐 용출산으로 불렸다. 금척이라면 나라의 유통 수치를 정하는 왕이 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고려의 마지막 왕이자 조선의 건국 아버지 이성계
고려의 마지막 왕이자 조선의 건국 아버지 이성계

이성계의 생전 뜻에 따라 그리운 고향 함흥에 묻히는 대신 함흥에서 가져온 흙과 억새풀로 봉분을 조성한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위치한 이성계의 묘 건원릉(健元陵). 묘지를 조성하기 위해 충청도에서 3,500명, 황해도에서 2,000명, 강원도에서 500명 등 총 6,000여명의 인력이 동원되었다. 오늘날까지 다른 왕릉과는 다르게 주기적인 벌초대신 건원릉 억새풀은 매년 한번, 한식날만 벌초해준다.

고려의 마지막 왕이자 조선의 건국 아버지 이성계
고려의 마지막 왕이자 조선의 건국 아버지 이성계

6.25 때 격전지였던 오늘날의 동구릉에서 폭격으로 파손된 건원릉 고석(鼓石) (받침돌)과 총알 자국이 선명한 혼유석(魂遊石). 왕릉에서는 정자각에서 제향을 올리기에 혼이 나와서 노닐던 곳이라고 혼유석이라 한다.

고려의 마지막 왕이자 조선의 건국 아버지 이성계
고려의 마지막 왕이자 조선의 건국 아버지 이성계
고려의 마지막 왕이자 조선의 건국 아버지 이성계
고려의 마지막 왕이자 조선의 건국 아버지 이성계

건원릉에는 석호(石虎) 넷, 석양(石羊) 넷을 엇바꾸어 밖을 향해 배치하고 있다. 건원릉은 억새 절정기에만 능침을 특별 개방하는데, 인터넷 예약을 통해 선착순 40명만 허용된다. 그렇지 않은 방문객들은 봉분을 멀리 언덕 아래에서만 볼 수 있다.

고려의 마지막 왕이자 조선의 건국 아버지 이성계

조선시대 배불 정책으로 폐사된 국보 280호 천흥사 종을 고려 최고 아름다운 종이라고 평하는 고고학자 이형구 교수. 조선 불교 탄압은 사찰의 토지를 몰수하고 승려들의 도성 출입을 금지시켰다.

고려의 마지막 왕이자 조선의 건국 아버지 이성계
고려의 마지막 왕이자 조선의 건국 아버지 이성계
고려의 마지막 왕이자 조선의 건국 아버지 이성계

국보 280호로 전형적인 한국 종의 양식을 충실히 보여주는 고려 1010년 제작 천흥사 종. 높이 187cm, 비천상이 새겨져 있고 종을 매다는 고리는 용의 모습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용뉴(龍鈕)라고 한다. 용 옆에 있는 원기둥 모양의 것은 음통(音筒)으로, 5단으로 구획된 표면이 꽃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고려의 마지막 왕이자 조선의 건국 아버지 이성계

대한민국 보물 제354호 천흥사 오층석탑은 충청남도 천안시에 밭으로 둘러싸여 있다.

고려의 마지막 왕이자 조선의 건국 아버지 이성계

고려말 난세 중 수많은 전쟁 영웅의 한 명이었던 이성계는 조선왕조를 건국하기 한 해 전인 1392년 8월4일(음력 7월16일) 고려의 마지막 왕으로 개성 수창궁에서 왕위에 올랐다.

이듬해 1393년 고려 국호를 조선으로 바꾸고, 태봉 때부터 고려시대까지의 기득권 세력이 유지해온 수도 개성을 지금의 서울, 한양으로 옮겼다.

원나라(1271-1368)를 지배한 몽고와 1231년부터 1270년까지 길고도 긴 전쟁을 치렀던 고려와는 달리 조선은 명나라(1368-1644)와 유난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는 건국한 지 10여 년이 지난 후에야 명나라로부터 조선이라는 국호를 인정받았다.


1380년 전라도에서 왜구를 격퇴시킨 고려 장수 이성계가 용출산(마이산의 고려 때 명칭)을 지나오며 꿈속에서 산신으로부터 받은 금척을 이야기하였는데, 금척이라면 국가의 수치를 정하는 왕이 된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우리 민족에 천년 이상 뿌리를 내린 불교는 고려의 국교였고, 태조 이성계도 불교 신봉자였지만, 정도전의 배불정책으로 시작한 조선시대의 불교 탄압은 사찰의 토지를 몰수하고 승려들의 도성 출입을 금지시켰다. 충청도 천안에 있었던 천흥사도 폐사되고, 현존하는 고려 최고 아름다운 종으로 평가되는 천흥사 종은 지금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고 있고, 천흥사지 오층석탑은 논밭에 우뚝 서 있다. 경주국립박물관에는 우물에 떨어져 있던 수많은 머리 없는 석불들을 모셔놓고 있다. 종교 핍박은 현재진행형으로, 민주주의를 실행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1408년 태조 이성계가 세상을 떠나자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의 건원릉(健元陵)에 묘지를 조성하기 위해 충청도에서 3,500명, 황해도에서 2,000명, 강원도에서 500명 등 총 6,000여 명의 인력이 동원되었다. 이 묘지는 조상들이 묻혀 있는 함흥 땅에 묻어 달라 유언했던 망자의 뜻에 따르지 않고 5째 아들 태종 이방원이 아버지 고향에서 가져 온 흙과 억새풀로 조성해서, 오늘날까지 다른 왕릉과는 다르게 주기적인 벌초 대신 억새풀을 매년 한 번, 한식날에만 벌초해준다.

생전 전투의 귀재였던 이성계. 그의 묘 건원릉도 한국전쟁에서는 피해를 모면하지 못했다. 6.25 때 격전지였던 오늘날의 동구릉에서 폭격을 받은 건원릉의 상석은 다리 하나와 귀퉁이가 파손되었으며, 총탄에 맞은 흔적이 명확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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