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입양출신 몬태나 한인 여성 43년 만에‘엄마’찾았다

2015-08-05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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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최성예씨, 사진 보고 본보로 연락해와
“남편 사망 후 입양시켜놓고 평생 눈물 흘려”

<속보> 3살 때 입양된 뒤 생부모 찾기에 나선 몬태나주 한인여성 타라 브래드포드(46)씨가 43년 만에 극적으로 자신을 낳아준 엄마를 찾게 됐다.


‘Kim Dong Sook’(김동숙)이란 이름과 입양 번호(#9680), 생년월일(1969년 7월8일)만 적혀있는 사진이 유일한 단서였던 그녀의 사연을 보도한 기사(본보 8월4일자 미주판 3면 보도)를 인테넷을 통해 확인한 그녀의 어머니 등 가족이 본보에 연락을 해왔다.

현재 인천 서구 원당동에 사는 최성예(70)씨는 본보에 국제전화를 통해 “한국 인터넷을 통해 타라 브래드포드의 기사를 봤는데 내 딸이 확실하다”며 “딸의 이름은 ‘김동숙’이 아니고 ‘김옥향’이다”라고 밝혔다. 그녀는 “얼굴을 봐도 한 눈에 내 딸인 것을 알아봤고, 생년월일도 옥향이와 같다”고 말했다.

최씨는 딸 옥향씨를 입양시킨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결혼한 뒤 경기 파주에서 살았던 최씨는 당시 1966년생인 아들과 1969년생인 딸을 낳아 길렀지만 남편이 알코올 중독에 빠져 1971년 갑자기 사망했다. 아들과 딸을 데리고 혼자 살길이 막막했던 최씨는 남동생 등 친정 식구들이 살고 있던 서울로 왔으나 가정 형편상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20대 중반 나이에 두 아이를 기를 수 없어 서울을 헤매다 당시 용산에 있는 한 칼국수 집에 들렀고, 그 식당 주인으로부터 딸을 좋은 곳으로 입양시키자는 제안을 받았다.

최씨는 이후 이 칼국수 집 주인과 함께 홀트 복지회를 찾아 딸의 미국 입양을 결정했다.

그녀는 “당시 홀트를 찾아갔는데 우선 내 안구부터 조사했던 기억이 난다. 잠이 든 옥향이를 거기에 두고 눈물을 흘리며 나왔다”고 회상했다. 이후 아들도 파주에 있던 큰집에 맡긴 뒤 힘겨운 생활을 하다가 재혼했으며 새 남편과의 사이에 아들(40)과 딸 장미예(38)씨를 낳아 기르며 살면서 평생 동안 옥향이를 입양시킨 죄책감에 시달려 눈물로 보내왔다고 했다.

딸 장미예씨는 “엄마가 미국에 입양 보낸 언니를 그리워하며 평생 동안 눈물을 흘리며 찾길 원해 입양관련 뉴스만 보면 관심을 갖게 된다”면서 “인터넷 다음(Daum)에서 언니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사진을 보고 한 눈에도 우리 가족임을 알아봤다”고 말했다. 최씨도 장씨가 보여준 기사 속 사진을 보고 한 눈에 딸임을 알아보고 눈물을 쏟아냈다.

장씨는 “언니가 돌아가신 작은 외삼촌을 가장 많이 닮았다”면서 자신이 어렸을 적 어머니 최씨, 외삼촌등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본보에 보내왔다.
장씨는 “엄마와 아버지께서 몸이 불편하셔 미국에 갈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미국 언니와 연락하고 최종 확인작업을 거쳐 언니가 빠른 시일 내에 한국을 방문하는 쪽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황양준기자 june66@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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