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흙의 향기

2026-04-30 (목) 07:49:58 나연수 두란노 문학회, MD
크게 작게
태양은 이글거리고, 바다는 에메랄드빛으로 눈부셨다. 인도양 남쪽, 수많은 섬들 가운데 하나 몰디브(Maldives Island). 열여덟시간의 긴 비행끝에 닿은 그 곳은 현실이라기보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꿈의 풍경과도 같았다.

코코넛 음료를 손에 들고 들어선 리조트. 눈앞에는 검푸른 바다와 끝없이 이어지는 수평선이 펼쳐졌다. 세상은 그저 빛과 물결로 이루어진듯 고요하고 찬란했다.
해질 무렵, 사람들은 해변에 모여들었다. 잔을 들고 웃는 사이 석양이 말없이 바다 위에 내려앉았다. 붉게 물든 물결, 잠시 머무는 황혼의 빛, 나는 그 앞에서 끝내 말을 잃었다. 다만 마음 깊은 곳에서 이 모든 것이 자연의 선물이라는 깨달음이 잔잔히 피어올랐다.
다음날, 돌고래를 보러 배를 탔다. 바다 깊숙이 나아갈수록 파도는 거칠어지고 배는 쉼 없이 흔들렸다.

기다림 끝에 수면위로 솟구치는 몸짓들, 빛을 가르며 지나가는 생명. 그 짧은 장면이 긴 시간을 대신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사흘째 되던 날, 나는 점점 말이 적어졌다. 끝없이 이어지는 물결, 쉼 없이 흔들리는 시간속에서 문득 낯선 생각이 밀려왔다. 나는 흙위에 사는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걸으면 단단한 감촉, 바람에 스치는 나무의 숨결. 그 평범한 것들이 나를 붙들고 있었다. 그때 떠오르는 것은 대지 와 토지에 대한 오래된 이야기들이었다.
사람은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라는 단순한 진실.


그날밤, 폭우가 섬을 덮었다. 번개가 창을 가르고 천둥이 바다를 뒤흔들었다. 숨을 곳 없는 작은 섬에서 나는 비로소 인간의 연약함을 느꼈다. 조용히 눈을 감고 한 문장을 마음속에 올려놓았다.
“이제 모든것을 주님께 맡깁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침이 오자 햇살이 아무일도 없다는 듯 방 안으로 스며 들었다. 나는 여전히 살아 있었고, 옆에는 밤을 지켜준 딸이 있었다. 그 사실 하나가 세상의 어떤 풍경보다도 깊은 위로가 되었다.

떠나는 날, 짐을 싸는 손길이 가벼웠다. 올때의 설렘과 다른, 돌아간다는 안도의 기쁨이 마음을 채웠다. 비행기가 바다 위를 떠오를 때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이제 안다. 눈부신 바다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이 무엇인지. 보이지 않아도 나를 붙들어주는 것, 흙의 향기이다.
나는 다시 그 향기로 돌아간다.

<나연수 두란노 문학회, MD>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