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나무가 세 번 흔들렸다'는 뜻에서 ‘상삼요桑三搖'라 일컫는 얘기를 되새기게 하는 요즘이다.
누구에게나 권력, 재물, 이성에 대한 욕망은 있겠으나 문제는 그 욕망이 끝없이 이어지는데 있다. 마흔살에 명나라를 창건한 주원장(朱元璋, 1328~1398)이, 하루는 그의 부인 마황후와 개국공신이자 정승인 상우춘을 불러 주연을 베풀었다. 한동안 술잔을 기울이다 한껏 취한 주원장이 궁궐 속 뽕나무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셋은 이미 인생의 뜻한 바를 이루었소. 그래도 무슨 욕망이 있다면 말들을 해보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저기 뽕나무가 흔들릴 것이오."
이에 상우춘이 먼저 “정승의 자리에 오르긴 했으나, 저도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라고 말하자 뽕나무가 흔들렸다. 다음은 마황후가 입을 열었다. “저도 궁궐에 있는 문무백관들 가운데 미남자를 만나면 그 품에 안겨보고 싶습니다."라고 하자 이번에도 뽕나무가 흔들렸다. 그리고 두 사람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은 주원장이 마지막으로 “나도 뭔가 재물을 가져다 바치는 신하가 좋소."라고 말하자, 이번에도 어김없이 뽕나무는 흔들렸다.
이처럼 ‘상삼요'는 자신이 이룰 수 있는 최상의 위치에서도 권력욕과 성욕, 재물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그런데도 이 세 인물은 결코 욕심에 지배당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
주원장은 빈농 출신으로서 금으로 된 침대를 선물한 신하를 크게 꾸짖은 일화로 유명한 검소한 황제였고, 마황후는 주원장과 고난을 함께 한 조강지처로서 죽은 후에도 주원장 옆에 묻힌 정숙한 황후였다. 상우춘은 젊은 시절부터 주원장을 섬긴 개국공신이자 죽을 때까지 그를 보좌한 당대의 충신이었다. 권력 서열에서 최우위의 위치에 있었던 황제와 황후와 정승이었던 이들도 원초적인 세 가지 욕심이 있었으나 그 욕망을 절제함으로써 자신을 지켰던 본받을 만한 모범을 보여준다. 우연한 기회에 다시 읽게 된 ‘상삼요’에 대한 글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에는 누구를 예로 들어 이 ‘상삼요’에 대한 얘기를 대체해 볼 수 있을까. 권력을 가진 자가 나머지 두 가지도 다 움켜쥐는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다.
지도자의 자질이 참으로 중요한 시대를 살면서 인간이 인간 답게 살 수 없는 자존감 상실의 이 위기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끝이 안 보인다.
민주주의의 중심 역할을 해온 미국의 지도자 한 사림의 오만으로 인해 세계가 지금 정치적 갈등, 경제적 위기, 종교에 대한 신성 모독 등 총체적인 몸살을 앓고 있다. 어쩌다가 미국이 이 지경이 되었는가. 그 어떤 이유로든 무고한 민간인과 사회가 희생되는 전쟁은 정당화될 수 없는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주원장 시대에는 세 부류로 구별해서 권력과 재물과 이성에 대한 욕망을 잘 다스린 이들을 예로 들었으나 이젠 더 이상 그 예를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욕심은 절제節制로 다스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화禍를 당하게 될 것이다."라고 한 명심보감의 한 구절을 생각한다. 인류에게 국가나 시대를 불문하고 경고해 온 이 금언金言을 모든 사람이 되새겨보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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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양희 워싱턴 문인회,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