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포의 폭과 높이는 자연이 인간에게 준 큰 선물이며 수 없는 무지개는 왕관위의 보석.
매주 화요일 센터빌 소재, 중앙시니어센터에서 서양예술학/역사를 강의하고 있다. 학생분들과 탑여행사와 함께 남미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여러 번 방문했지만 이구아수 폭포는 이번이 처음이다. 외진 곳에 있어 항상 ‘다음에’로 미뤄졌던 그 곳, 마침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비행기를 타고 현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마주한 그 광경! 말이 아닌 시로 대변한다.
악마의 목구멍
천지의 물을 집어삼키려 하는가
천사의 숨결과 옷자락
수천 갈래의 물줄기가 지구의 심장 속으로 쏟아진다
낙하가 아니라, 하늘을 향한 대지의 울부짖음
신의 손끝에서 쏟아지는 경배
‘악마의 목구멍’을 탈출한 물줄기들
천사의 입김처럼 피어올라
물안개 되어 눈부신 천상으로 날아오른다
하늘로 치솟는 그 하얀 숨결은
마치 영혼이 승천하는 길을 보여준다
성스럽고도 두려운 풍경
귀를 찢는 굉음 속에서도 한 줄기 침묵이 있다
그것은 자연이 들려주는 기도
인간이 겸허히 무릎 꿇어야 할 순간
그대, 내 작은 영혼을 품어주는 대자연의 서사시여
정글 속 그랜드 캐넌과 나이아가라, 빅토리아의 합작품
첫 만남부터 숨이 멎을 듯한 장엄함으로 다가왔다. 마치 아마존 정글속에 그랜드 캐넌, 나이아가라와 빅토리아 폭포를 모두 합쳐 놓은 엄청난 테마 공원과도 같다. 이 표현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우선 두 국가에서 바라보는 절경이 사뭇 다르며 체험 역시 완전 다르다. 브라질에서는 그랜드 캐넌과 같이 서서히 걸어서 접근하는데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신비스러우면서도 요염한 자태를 뽐내는 모습이 절경이다.
거대한 협곡을 걸어가면 정글속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코아티 너구리가 인기 만점이다. 긴 주둥이와 고리모양의 꼬리가 귀엽다. 호기심이 많고 전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친구들에게 내 앞에서 걷던 젊은 여인이 과자를 주는데 한 녀석이 덥썩 손가락을 물었다. 순식간 아리따운 여인의 괴음이 정적을 갈랐다. 가해자인 코아티는 달콤한 과자와 짜고 달달한 피를 혓바닥으로 훔치며 유유히 사라진다. 미국에서는 불가능한 광경이다.
이단 폭포 사이에 목조 보도를 설치하여 왼편에서는 낙하되는 폭포수를 맞으며 오른편에서는 천길 아래로 낙하하는 폭포를 감상하는 맛이 끝판왕이다. 정글 계곡 아래로 떨어진 물은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물안개로 변신하여 발 아래 펼쳐지는 파노라마 무지개는 마치 동화 속 장면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폭포의 굉음은 지구가 숨 쉬는 듯 생생한 생명의 소리다.
실종사건 발생…먹는 것으로 푸는 한인들의 정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에 올랐다. 너무 멋진 장면에 서로 사진 촬영에 진심이다. 몽환자들 같이 정신없는데 누군가 어르신 한 분이 실종됐다고 말하자 순식간에 분위기는 초토화. 단체로 움직일 때 가장 난감한 것이 실종사건이다.
다행히 가이드가 50여분후 실종된 분을 찾아오셨다. 모두들 달려가 안아주고 걱정을 표시하며 한 분이 당이 떨어져 그렇다며 과자와 사탕을 먹인다. 한국인들만의 정이 듬뿍 가슴에 와 닫는 순간, 이런 모습은 한인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별미다.
폭포수 안에서 폭포수를 들이키다
폭포 밑 강변에는 나이아가라와 같은 뱃놀이도 있다. 그러나 완전히 달랐다. 가이드가 감기 조심하라며 우리에게 철저한 무장을 강조했다. 모두 비옷에 판초를 썼는데 보트를 타려고 긴 줄을 섰다. 우리들만 중무장했지 외국인들은 웃통을 벗거나 반바지 차림이다. 우리 모습이 이상해 보였는지 웃는 친구들 사진촬영 하는 친구들도 있어서 다소 쪽팔렸다. 감기 걸리면 마추픽추 등반도 포기해야 한다고 계속 겁을 주니 우비를 입고 작은 보트에 올라탔다. 결과부터 말씀드린다면, 보트는 무조건 타야 하고 비옷이나 판초는 착용 안 하는 것이 좋다. 여기 한여름 정글속이다. 모두 속옷까지 젖었으며 수직 낙하하는 폭포수는 머리에서 귀, 눈, 목구멍속으로 사정없이 들어갔다. 폭포수 안쪽 바위를 손으로 직접 만져볼 기회도 있었다. 미국에서는 안전을 이유로 불가능한 경험이 이곳에서는 가능했다.
아르헨티나의 또다른 별미
아르헨티나 쪽에서 폭포로 가기 위해서는 버스와 기차를 이용해야 한다. 탑승한 기차 안에서 만난 여러 여행객들과의 대화 또한 여행의 큰 기쁨이었다. 한 달 전 다녀왔던 호주에서 온 두 노부부와는 금세 친밀한 대화를 나누며 시드니 오페라 공연과 푸른 바다와 멜버른의 정취를 다시 한번 회상할 수 있었다. 또 영국 뉴캐슬에서 온 중년 부부와는 영국 문화와 축구, 특히 손흥민의 이야기가 화제로 떠오르며, 즐거운 소통의 시간을 경험했다.
미주한인들은 용맹한 개척자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여행 온 세 명의 활기찬 중년 여성분들과의 만남이었다. 이들은 오랜 친구관계인데 평생 단 한 번도 이곳에 여행 온 경험이 없다 하여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되묻자 어깨들을 들썩 올리며 남편, 식구, 직장 등 서로 다른 이유들을 댄다. 오래전 뉴욕에서 마주했던 중년의 여인이 떠올랐다. 그녀는 단 한 번도 뉴욕을 벗어나 본적이 없다고 담담히 말했었다. 평생 한국을 떠나보지 못한 한인과 같다. 따라서 미주한인들은 용맹한 개척자들이다. 그녀들의 유쾌하고 솔직한 이야기들로 분위기를 밝게 만들었고,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 자국 대통령에 대한 재치 있는 비판과 유머로 좌석에 웃음을 선사했다.
보이지 않는 악마의 목구멍
폭포의 절정, ‘악마의 목구멍(Garganta del Diablo)’은 아르헨티나에서만 가능하다. 원주민과 유럽 탐험가들의 카누가 이 지점에서 전복되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다. 폭포의 압도적인 수량은 초당 약 1,756 입방미터에 달하며, 이는 나이아가라 폭포의 두 배가 넘는 규모로서 세계 최대 폭포다. 폭포의 힘찬 굉음과 끝없는 물줄기의 소용돌이는 마치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강력한 에너지로 그 위용을 사진으로 담을 수 없음이 아쉽다.
이민자가 아닌 대국인의 모습
이번 여행에는 노년층이 절대 다수였다. 그러나 젊은 여행자 못지않은 열정으로 험난한 길과 무서운 스케줄을 극복하며 순간마다 침착하고 용감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유로움과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들은 이제 우리가 이민자가 아닌 미국인임을 입증하는 모습이기도 했다. 한 예로 버스, 기차, 지프 트럭, 보트 등 여러 교통수단으로 왕래했는데 긴 줄과 악조건 속에서 그 누구도 불평을 표현하지 않았다. 양보와 배려가 자연스레 배어 나왔다.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나이 들어 몸 성한 사람은 없다. 공동체에서는 배려, 의무, 권리, 도덕을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현지 가이드분은 이 점이 미주한인들이 고국에서 온 관광객들과 크게 다른 점이라 말했다.
인생에 한번은 꼭 가보아야 할 이구아수 폭포
다소 크레셰 같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꼭 한번은 가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연의 아름다움만이 아닌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세 국가가 국경을 맞댄 특수한 지리적 위치로 국가 간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장소다. 폭포는 그렇게 우리에게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 삶의 복잡한 양상을 함께 보여주었다. 탑 여행사와 함께 떠난 이 특별한 여정은 여행 이상의 깊은 인생의 교훈과 감동을 선사했다. 다음은 천상의 라프타·마추픽추로 떠난다.
문의 (703)608-0149, jahn20@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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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안 (미한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