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집단지성과 대중함성

2025-02-13 (목) 04:37:39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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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전달 할 때 하나의 소리가 있을 때도 있지만 모두가 소리를 낼 때도 있다. 그 여러 가지의 소리들 중에서 가장 의미있는 소리는 사람들의 가슴과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있다. 여러 사람들의 소리를 모아 한 목소리로 만들어내는 것이 제도이고, 조직이고, 대표제도이다. 그 전체의 소리를 모아서 내는 대표소리를 ‘집단지성’이라고 한다.

집단지성은 미국의 곤충학자가 개미들이 단체로 개미집을 짓는 것을 보고 그들이 한 마리의 개미는 미미하지만 단체로 모일 때는 높은 지능체계를 이루어낸다는 것을 발견한 것에 근거한 용어이다.

그렇다고 집단지성이 다 지혜롭고 현명한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한 사람이 전체의 생각과 방향보다 더 나을 때가 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이 있듯이 집단이 최선과 최고의 결정을 내린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상대적으로는 하나의 개체보다는 여러 사람이 모인 집단이 더 바르고 현명할 가능성이 높을 수 밖에 없다.


개미 뿐 만 아니라 사람이 집을 지을 때에도 한 사람의 힘이나 한 사람의 생각보다는 여러 사람이 힘을 더하고 더 멋있고, 아름다운 집을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은 더 많아지게 된다.

집단지성의 장점은 개인의 자유, 개인의 표현, 존중, 대화, 상의의 과정을 통해서 무엇이 가장 옳고 좋은지를 걸러내는 과정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집단지성이 결국 조직과 사회, 단체 그리고 더 나아가 국가의 발전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만일 집단지성이 약하여지거나 무너지게 될 때 방향과 목적을 잃어버리는 큰 위험을 만나게 된다.

집단지성은 재촉하지 않으며, 서두르지 않지만 느리지도 않고, 말하기는 하지만 모욕하지 않으며, 비난을 받지만 당황하지 않고, 실수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위기를 만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집단지성의 힘이다. 개미집이 큰 동물의 힘이나 빗물에 무너져도 다시 개미들은 힘과 지혜를 모아 집을 다시 짓는 그 위대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때로는 ‘집단지성’이 왜곡되면 이성이나 지성이 변하여 조용한 하늘에서 눈과 비가 갑자기 내리듯이 큰 혼동을 겪게 된다. 운전하다가 누가 잘못했는지 모를 때 두 사람의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서 자기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처음에는 말하다가 서로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할 때는 조금씩 조금씩 소리가 높아지게 된다. 그러면 그곳에 함께 있던 사람들이 구경을 하게 되고, 두 운전자들의 대화와 의견에 참여하게 된다. 그래서 아이싸움이 어른싸움이 된다는 말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양쪽이 나뉘어져서 서로가 서로의 의견을 내세우게 되고, 양쪽은 드디어 지성이 변하여 야성이 되고 그 야성은 사자의 포효처럼 숲속을 흔들만큼 울리는 함성으로 높아진다. 지성집단은 무리와 대중으로 바뀌고 질서와 통제를 잃게 되는 혼란을 겪게 되는데, 곧 ‘ 집단지성’이 ‘대중함성’으로 바뀌게 된다.

대중함성도 때로는 흥미로울 때가 있다. 며칠전 있었던 미국 59회 수퍼볼 경기를 보면 양팀을 응원하는 관중무리들의 소리가 대단했다. 그 응원의 함성, 무리들의 함성은 아무리 크더라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그 소리는 분노가 아닌 환희와 열광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늘 집단지성과 대중함성이 섞여서 새로운 길을 찾아 발전해 왔다.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면서 통제하면서 그렇게 공존해 왔다. 성경은 말씀한다.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19:39-40)

집단지성이든지 무리함성이든지 소리는 내야 한다. 그 어떤 소리이든지 바른 길과 바른 목적이라면 모두가 다 아름답고 행복한 소리일 것이다.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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