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美, 北 ‘조건부 대화’ 제의에 비핵화 고수…정상외교의지는 여전

2025-07-28 (월) 08: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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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완전 비핵화 목표 재확인해 핵보유국 인정 조건 건 대화 거부

▶ APEC 정상회의 계기 2019년 판문점 만남 같은 ‘깜짝 회동’ 시도 가능성

북한이 비핵화가 아닌 다른 주제에 대해서는 미국과 대화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담은 입장을 발표하면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향후 적절한 계기에 그런 제안에 응할 가능성이 주목된다.

지금까지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1기 때 추구했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고수하는 가운데 그때보다 핵무기 역량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북미 간 대화가 성사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친분을 과시하며 공개적인 러브콜을 보내도 북한의 반응은 냉담했고, 트럼프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와 중동 전쟁에 대응하느라 북한과 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여력이 없는 제약도 있었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29일(한국시간) 낸 담화는 북한이 완강한 '대화 거부'에서 '조건부 대화'로 입장을 전환한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김 부부장은 담화에서 미국이 북한의 "불가역적인 핵보유국 지위와 그 능력", 근본적으로 달라진 "지정학적 환경" 등 "변화된 현실"을 인정한다는 전제로 미국에 "그러한 새로운 사고를 바탕으로 다른 접촉 출로를 모색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권했다.

이는 북한의 비핵화를 목표로 한 협상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용인할 경우 핵 군축이나 군사적 충돌 위험 관리 등 다른 목적의 대화에는 나설 수도 있다는 입장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북한의 이런 제의에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첫 임기 때 김 위원장과 세 차례의 회담을 통해 달성하고자 했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지금도 이를 위해 김 위원장과 대화하려고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백악관 당국자는 로이터통신의 질의에 "대통령은 이들 목표를 유지하고 있으며 완전히 비핵화된 북한을 이뤄내기 위해 지도자 김(정은)과 소통하는데 여전히 열려 있다"고 밝혔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과 외교에 문을 열어두고 있지만 그 목적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이며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대화하지는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시드 사일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은 28일 연합뉴스에 "2019년 이래 북한의 가장 큰 외교 목표는 핵 프로그램을 기정사실화하고 대화 테이블에서 북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제외하는 '포스트 비핵화 대화 시대'로 넘어가는 것"이라면서 "한국과 미국 정부의 딜레마는 핵 문제를 의제로 두지 않는 어떤 대화를 추진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의미가 없고 정당화하기 힘들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국제 핵 비확산을 매우 중요시하는 미국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치를 낮추기 힘들다는 점에서 현재로서 북미 대화가 성사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그간 여러 차례 김 위원장과 만날 생각이 있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북한과 정상외교 의지가 강하다는 게 변수가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은 우크라이나와 중동 지역의 분쟁 대응에 집중하느라 여유가 없었지만, 이들 현안이 어느 정도 해결되면 북한과 접촉 노력에 더 힘을 쏟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0월말 한국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면 그 계기에 2019년의 판문점 회동 같은 깜짝 만남이 성사될 수 있다는 관측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앤드루 여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는 이 가능성에 대해 "난 트럼프 행정부가 김정은이 (트럼프를) 만나고 싶어 하는지 보기 위해 어떤 시도를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최근 연합뉴스에 밝혔다.

로버트 랩슨 전 주한미국대사 대리도 연합뉴스에 "극적인 상황에 대한 트럼프의 선호"를 고려하면 이 같은 회동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판문점 회동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방한 직전 트위터에 글을 올려 회동을 제안하는 쇼맨십을 보였고, 김 위원장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호응해 역사적인 만남이 성사된 바 있다.

전문가들이 북미 간 근본적인 입장 차이에도 대화 재개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큰 이유 중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 간 기존 관계와 정책을 개의치 않고, 적대국의 정상이라도 일단 직접 만나보려고 하는 스타일이라는 점이다.

또 그의 국정 운영 방식을 보면 원칙과 장기적인 영향보다 당장의 이익을 중시하며 의외로 현실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일례로 김 부부장이 대화가 가능해지려면 미국이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조건 중 북한의 "불가역적인 핵보유국 지위와 그 능력"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도 어느정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라고 여러번 칭했는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인정 여부와 무관하게 일단 지금의 북한은 과거 북미 정상회담 때와 달리 다수 핵무기와 미국 본토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변화된 현실"을 인정한 발언으로 평가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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