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한국 유튜브들은 유시민 작가(전 보건복지부 장관)가 비명계(비이재명계)로 알려진 김동연 경기지사, 김경수 전 경남지사,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그리고 김부겸 전 국무총리 등을 향해 강도 높은 쓴소리를 하는 장면들을 올렸다. 즉 유 작가는 이분들의 반이재명 언행들은 더불어 민주당을 망하게 하는 길이라고 비난했다.
그의 비난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김동연 지사는 ‘배은망덕’, 김경수 전 지사는 ‘지도자 행세 말라’, 임종석 전 실장은 ‘다른 직업 알아봐라’, 김부겸 전 총리는 ‘책 많이 읽으시길’. 이런 비난에 대해 지난 8일 김부겸 전 총리가 유 작가에게 답변한 내용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
김 전 총리는 “유시민 선생께서 책을 읽으라고 하신 충고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책을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책 한권을 들어 보여주었다. 그 책은 하버드대학 정치학자 대니엘 지블랫(Daniel Ziblatt) 교수, 스티븐 레비스키(Steve Levitsky) 교수 공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박세연 역, 어크로스, 2018)였다. 영어 원본은 ‘How Democracies Die’(International, 2018)이다. 이 책은 2018년 출판 이래 계속 뉴욕 타임스 베스트 셀러를 유지하고 있다. 나는 김 전 총리가 정치인으로서 아주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책을 읽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 전 총리가 이 책을 통해서 저자들이 지적한 민주주의의 취약점들, 즉 서로 적대하는 정당, 양극화된 정치, 그리고 무너지는 규범 등을 잘 이해하고 현재 한국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이 취약점들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잘 분석하고 대안을 내놓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대니엘 지블랫 교수는 라틴 아메리카의 정권교체 등을 중심으로 민주주의 변형을 중점적으로 연구해 정치학자로 하버드대 우수강의 교수에게 수여하는 로슬린 에이브럼스 상(Roslin Abrams Award)을 받았으며 뉴욕 타임스에 2018년부터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진단하는 글을 100회가 넘게 실어 정치학계와 정계에서 큰 관심을 받았으며 스티브 레비스키 교수는 19세기부터 현재까지 유럽 민주주의와 권위주의를 집중적으로 연구,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2017년 미 정치학회가 주는 우드로 윌슨 상(Woodraw Wilson Award)을 받았다.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라틴 아메리카 유럽 그리고 미국의 경우를 비교 연구한 끝에 민주주의가 놀라운 과정을 거쳐 무너지고 있음을 발견하고 모든 민주주의 국가들에게 경고와 대비책을 제시하고 있다.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정부를 선택하고 지도자들을 뽑는 선택권과 정치제도에 국민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참정권 그리고 개인의 자유 인권 평등을 보장받는 민주주의 제도는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해온 정치제도 가운데 가장 이상적이고 효율적이며 보편적 제도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런데 이 민주주의제도가 대한민국을 포함해서 세계 여러 곳에서 무너지고 있는 것 또한 숨길 수 없는 사실이 아닌가? 이 책 내용 가운데 관심을 끄는 대목은 4장 ‘합법적으로 전복되는 민주주의’, 5장 ‘민주주의를 지켜온 보이지 않는 규범’, 그리고 7장 ‘규범의 해체가 부른 정치적 비극이다.’
저자들은 이 장들을 통해 민주주의가 건전하게 지탱될 수 있는 길은 제도나 법보다 규범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규범은 정치적인 윤리 도덕을 말한다. 제도와 법이 아무리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집행된다 하더라도 규범이 따르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무너진다고 저자들은 여러 사례들을 비교한 결과를 통해 입증하고 있다. 규범의 핵심은 자신과 다른 집단과 의견이 다른 것을 인정하는 정치인의 집단의지를 의미하는 상호관용(mutual tolerence)과 주어진 법적 권리를 제도적으로 자제하여 행사하는 제도적 자제(institutional forebearance)다.
왜 현재 한국이 정치적인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어가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이 소용돌이는 다수석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 민주당이 30회에 가까운 특검과 탄핵 절차를 발휘함으로써 윤석열 행정부의 행정집행이 마비 되는데서 부터 시작됐다. 이러한 일련의 절차는 민주주의의 제도와 법에 따라 이루어졌기 때문에 아무런 하자가 없지만 야당은 ‘주어진 권리를 제도적으로 자제하여 행사하는 제도적 자제’를 잃어서 민주주의 규범을 어긴 것이 아닌가?
한편 이러한 야당의 행위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선포라는 무기를 가지고 대응에 나섰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윤 대통령의 조치는 ‘자신과 다른 집단과 의견이 다른 것을 인정하는 정치인의 집단의지’인 상호관용의 규범이 결핍된데서 온 것이 아닌가?
한국의 정치인들이 성을 내며 서로 고함지르고 싸움하기 전에 책 좀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 생각이 깊고 넓어진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꼭 읽어보기 바란다. 그리고 정치인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이 읽어야 하는 필독서 하나를 소개한다. 바로 성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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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종욱 전 볼티모어대교수 사회학박사,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