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서울의 봄(Seoul Spring)

2025-02-11 (화) 07:43:45 제프 안 조지워싱턴대 한인동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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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도시의 현실을 알고 싶다면 교수나 정치인들보다 택시 기사나 바텐더들과 대화해보는 것이 좋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기사님들은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하는 분들이 많았다. 손님들과 다툴 이유도 없고, 굳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낼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와보니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서울의 현실을 반영하듯, 기사님들은 손님의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출했다. 그중에는 거친 표현과 욕설도 여과 없이 터져 나왔다.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피부로 와 닿았다.

워싱턴에서는 온갖 정치적 난투전 끝에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했다. 매서운 한파 속에서도 그는 각국 정상들과 회담을 시작하며 새로운 국면을 모색하고 있다. 유권자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는 매일 각종 행정명령을 보란 듯이 발표하며 새로운 현실(New Normal)을 주도하고 있다.


워싱턴에서 반세기를 살았지만, 여전히 미국인들의 회복력(resilience)과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놀라곤 한다. “심하다”, “나라가 망한다”는 우려 속에서도 미국은 갈 길을 가고, 공화정치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나는 짧은 일주일 일정으로 서울에 왔다. 여기는 엄동설한, 땅과 강물이 모두 꽁꽁 얼어 있다. 그러나 하늘의 뜻과 달리, 서울의 도심-시청과 남대문을 비롯한 중심지-은 진보와 보수 양 진영의 시위대가 점령한 채 교통을 마비시키고 있다.

확성기를 찢을 듯한 고함 소리와 욕설이, 매서운 추위를 피해 종종걸음 하는 시민들의 어깨를 더욱 짓누르는 듯하다. 이 잿빛 겨울은 자연의 현상이겠지만, 극좌와 극우로 나뉜 군중들의 함성은 ‘민주주의의 현상’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내 눈에 비친 모습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人災)다. 곳곳의 상권은 무너지고, 시민들의 주머니는 가벼워지며, 국제 위상은 추락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1919년 2월 8일을 떠올린다. 엄동설한의 추위 속에서도, 유학생들은 도쿄에서 독립선언을 발표했고, 그것이 3·1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우리가 힘겹게 일궈낸 독립, 우리가 지켜야 할 민주공화국의 정치, 그리고 더욱 발전시켜야 할 경제 시스템. 이 모든 것을 우리는 어떻게 보존해야 하며, 또 어떻게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가?

‘프라하의 봄’, 그리고 ‘아랍의 봄’. 격변의 시대에 늘 등장하는 단어-봄, 봄, 봄.
한때 세계를 놀라게 한 대한민국. 경제와 정치 모두 선진국 반열에 오른 이 나라. 그러나 어느 순간 불어닥친 이 한파와 분열. 어린 시절, 발을 동동 구르며 견뎠던 그 추위가 다시 떠오른다.
아, 서울의 봄이 기다려진다.

<제프 안 조지워싱턴대 한인동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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