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마시면서도 잠을 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커피를 마시면 잠을 잘 못 잔다. 세월에 장사 없다. 하지만 요즘같이 바쁜 시기에는 잠이 문제가 아니다. 일에 집중하다 보면 오히려 당이 당긴다. 말도 많이 하니 달달한 커피가 목을 축이기에도 좋다.
오늘도 역시 오후가 되니 몸에서 단 것을 들여보내라는 신호가 온다. 커피숍을 찾아 달달한 시럽을 넉넉히 넣어 커피를 시켰다. 주문을 받는 사람의 키는 내 허리 정도이고, 살짝 덩치도 있는 여자 분이다. 커피숍을 갈 때마다 느끼는 점인데, 커피를 파는 카페는 다른 식당이나 매장에 비해서 유난히 개성이 강한 직원들이 많다. 보라색이나 오렌지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사람, 팔과 목에 천연색으로 문신을 한 친구들. 귀, 코, 입술 심지어 혀까지 뚫어 링을 단 직원들. 여름엔 배꼽에 보석이 박혀 있기도 하다. 나아가 가끔은 전통적인 젠더 구별이 어려운 친구도 있다.
미국, 특히 전 세계 사람들의 이동이 많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살면서 인종, 국가, 종교에 대한 편견은 많이 옅어졌다. 그냥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지구인 중의 한 명이라고 생각된다. 한국에 살 때 뚱뚱한 내가 이 곳에서는 중간이다. 가끔은 스몰(small) 사이즈의 옷이 맞을 때도 있다. 하지만 오늘 만난 다운증후군이 있어 보이는 직원을 미국의 상점에서는 처음 봤다. 주문도 잘 받고, 커피의 당도와 주문한 커피를 다시 한 번 더 확인하는 것으로 봐서 카페 직원으로서는 꽤 훌륭하게 손님 대응을 한다.
부동산 일을 하다 보면, 이런 특별한(?) 친구들을 종종 볼 수 있다. 한번은 손님과 아파트를 갔다. 아파트 내부를 보여주는 친구가 일반인과는 조금 달랐고, 한국에서 갓 온 손님은 이런 친구의 행동과 반응이 느리다고 에이전트인 나에게 불평을 쏟아냈다.
손님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미국에서는 특별한 기술, 지식, 업무가 필요하지 않는 단순한 일은 장애인을 고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집 보여주는 것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니 굳이 고학력의 기술자를 고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이렇게 몸이 불편한 친구들도 경제 활동뿐만 아니라, 사회의 일원으로 본인이 속한 공동체에 기여함으로써 자긍심도 생기고, 개인으로나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오늘 이 친구가 보여준 집 중에서 선생님이 맘에 드는 집이 있으면, 서류 일은 매니저가 할 테니 집 계약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거예요. 우리네 정서로는 느린 것이 답답하지요. 저도 처음에 미국 와서 그랬답니다. 시간이 가면 덤덤해 질 뿐 아니라, 미국은 의례히 기다리는 나라라는 것을 아시게 될 거에요”라고.
나의 직업이 서비스업이니 손님으로 하여금 잘난 척 한다거나, 또 가르치려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상대방의 눈치도 적당히 봐 가면서 말이다.
한 때 뇌졸중으로 쓰러져 몸이 불편한 선배가 말했다. “몸이 느리니 좋은 점도 있다. 길가의 이름 모를 들꽃의 하루하루 작은 변화도 보이거든. 몸이 내 맘 같지는 않아 할 수 없이 모든 것이 느릴 수밖에 없는데, 덕분에 몸이 정상이었을 때보다 세상은 더 아름답게 보여. 넌 항상 바쁘니 앙증맞은 들꽃을 볼 여유도 없이 휘리릭 지나가지?”
‘어느 게 더 나은 삶일까?’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하루다. 문의 (703)625-9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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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 정 갤럭시 부동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