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에 23년만에 9일간의 짧은 여정이지만 모처럼 한국 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딸의 결혼식을 서울에서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딸이 한국에서 자란 것도,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한국에 계신 우리 부부의 직계 형제와 또래 사촌 언니 오빠들을 초대하여 소박한 결혼 서약을 하고 싶다고 해서 이다.
장소가 협소해 초대 인원을 100명으로 한정시킬 수밖에 없었는데도 신부와 신랑의 사랑을 축하하고 기념해 주기 위해 노르웨이, 프랑스, 콜롬비아, 태국, 미국 워싱턴 DC, 뉴욕 등에서 참석해 주신 50명의 신부 신랑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 신랑측 직계가족 10명, 그리고 신부측 우리 형제, 조카들 40명을 포함해 경복궁 인근 한옥 갤러리에서 야외 결혼식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결혼 장소는 조선시대 궁중의 화초와 정원 등을 관리했던 장원서 터에 1908년 한옥으로 지어져 쓰다 현재는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물론 결혼 장소는 오로지 딸이 혼자 결정하고 선택했다. 조상의 미학을 계승한 전통의 한옥과 미래의 가치를 위해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는 의미를 지닌 ‘이음 더 플레이스’의 홍보 문구가 마음에 와 닿았다고 한다.
물론, 딸이 미국이 아닌 서울을 선택한 이유에는 사정이 있었다. 신랑 부모님은 워싱턴 주에 살고 계셨는데, 예비 신랑신부가 모두 워싱턴 DC에 직장과 거주지가 있고, 신랑 아버지 삼촌이 6.25전쟁 중 참전하여 낙동강 전투에서 전사하여 알링턴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싶다고 하여 양가 부모 상견례를 이곳에서 하면 어떻겠다는 의사를 물어 왔다고 한다. 우리는 흔쾌히 수락하고 저희 집에서 만나 뵙는게 어떻겠냐고 해서 한식을 준비하여 상견례를 하게 되었다.
가족 사진들을 서로 보여주며 담소를 하였는데 조심스러웠지만 실례를 무릅쓰고 신랑 부모님께 조상의 족보를 말해 줄 수 있냐고 여쭈어 보았다. 신랑의 부계는 앵글로색슨 계 영국을 조상으로 출발하여 후에 스코틀랜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민족과 혼합되었고, 모계는 게르만족계 독일을 조상으로 출발하여 후에 프랑스, 덴마크, 스웨덴 민족과 혼합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해 주었다.
우리 쪽 조상도 궁금해 하시어 우리는 조선왕조 자손으로 전주 이씨 9대 왕 성종의 16남 운천군 자손이라고 설명해 드렸다. 이해를 돕기 위해 족보를 내밀며 설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질문이 들어왔다. 한글이 아닌 한자로 표기가 되어 있는 이유를 신기해 하며 물었다. 난감하여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하다 이렇게 답변해 주었다.
“로마제국 시대에는 라틴어가 유럽의 중심어였듯이 조선왕조 시대에는 중국의 거대한 문화와 사상이 동아시아에 영향을 끼쳐 중국 문자인 한자가 중심이었다. 관의 모든 문서와 족보도 그래서 한자로 표기되었다”고 설명해 주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왕족의 자손이라고 하니, 혹시 한국에 많은 땅을 가지고 있냐”고 뜬금없이 물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땅은 없지만 조상의 땅은 넓지요”라고 답했더니, 웃으시며 “그 땅은 어디에 있습니까” 묻길래 “그곳은 서울 경복궁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리하여 결혼 장소가 서울로 정해졌다, 물론, 낙동강 전투에서 전사한 삼촌의 행적을 보고 싶어 임진각과 부산을 방문하길 원한다고 했다.
신랑 부모님들은 결혼식 10일 전에 서울 인사동 호텔에 투숙하면서 경복궁, 인사동 거리를 누비며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체험하며 한식을 즐기셨다고 한다.
퇴계로 3가에 있는 국가 유산인 ‘한국의 집’에 초대하여 궁중 요리로 화답을 했는데 사실, 저희도 익숙하지 않은 궁중 음식을 호기심을 가지고 음미하는 것을 보고 매우 놀라웠다.
사실, 한국 사위가 아닌 미국 사위를 받아 들인다는 게 부모로서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신랑의 부모님도 저희와 생각이 다르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가정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고 수용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신랑과의 첫 만남에서 이러한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친절이 항상 몸에 배어 있고, 매사에 생각이 사려 깊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음식을 사위가 제 아들보다 더 좋아하고 잘 먹어 누가 미국 놈이고 누가 한국 놈인지 가끔씩 헷갈리곤 했다.
우리 부부는 매우 행복하다. 딸과 아들 모두 워싱턴 DC에 살고 있어 매달 한번씩 돌아가며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특혜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추수감사절에 두가지 기쁜 소식이 왔다. 첫번째는, 딸이 결혼 후 첫 방문지로 시댁이 아닌 친정집으로 오겠다고 일요일에 문자 메시지가 왔다. 두번째는 아들이 뉴저지에 사시는 걸 프랜드(이탈리안 아메리칸) 부모님을 찾아 뵙기 위해 이번 추수감사절에 첫 인사를 가겠다고 했다. 둘 다 기대되는 추수 감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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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국 정치 철학자,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