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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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과 역사지우기

2024-11-12 (화) 강창구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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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조직이론에 허즈버그의 ‘동기 위생이론(動機-衛生理論) Herzberg's motivation-hygiene theory’이라는 게 있다. 사람이 일을 하게 되는 동기와 함께 불만을 회피하려는 심리가 동시에 별개로 존재한다는 연구로 조직생활뿐만 아니라 인간세상 제반을 망라해서 적용해도 무방한 연구다. 반드시 보상(補償)을 받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한다기 보다는 부조리한 세상을 바꿔보려는 인간 본연(本然)이 발동되는 일들로 이들의 숭고함 때문에 세상은 또 희망을 품는다.

상중의 상(賞)은 노벨상이다. 그런 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된 1970년, 중학교 입학때부터 현재까지도 최상의 권위와 명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2000년 10월 13일 국민의 숙원이던 그 노벨상을 고 김대중 전대통령에게 수상발표가 있을 때까지는 한국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그리고 4반세기만인 금년 10월10일날 작가 한강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되었다. 작가 개인의 영광이고 국가적인 경사다.

광주시내 어디서든지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산이 무등산이다. 필자가 고등학교를 광주로 진학할 당시에는 무등산을 쳐다보기만 했지 민간인 통제선 이하 최고봉인 서석대(瑞石臺)를 올랐던 일은 1977년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이다. 암울했던 1970년대, 1월1일 꼭두새벽에 무등산에 올라서 신년일출을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기 밥 먹는 것 보다는 나라의 안녕과 민족의 통일을 염원하는 일을 더 중히 생각하는 좀 요상(?)한 사람들이다. 격동의 1980년을 지나면서는 그 숫자가 가히 폭발적으로 많아졌다. 중머리재의 넓고 평평한 벌판과 중봉까지 이어지는 수천명의 사람들이 내지르는 울부짖음 같은 함성과 탄식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전남 화순에는 능주(綾州)면이 있다. 영벽정, 적벽, 정암 조광조 유배지로도 유명하다. 원래는 광주, 전주와도 비견될 충절의 고을이 군(郡)에서 읍(邑)으로 일제에 이르러 면(面)으로 격하된 곳이다. 둘러보니 아직도 산세와 경관이 범상치 않았다. ‘중국인민 해방군가’(1937년 작곡)의 작곡가 정율성 생가터를 둘러보러 갔다. ‘중국 현대음악의 별’, 2013년 박근혜 방중 사열식 연주곡, 1990 아시안 게임 개막식 연주, 중국의 국가적 행사에 항상 등장하는 곡이며, 유툽에서 중국여군 행진시 귀에 익은 바로 ‘그 음악’이다. 2005년 중국 문화부 장관이 능주 생가터 방문, 2014년 시진핑 방한 서울대 특강시 ‘한중우호의 대표적 인물’ 이라고 했던 곳이다.

중국의 초대 총리 주은래의 사위로서 조선의열단 활동에 대한 검증과정은 아직도 남아있으나 이곳은 한때 중국관광객으로 연일 북적였다는 말이 거짓말처럼 변해 있었다. 불과 2년만에 벌어진 일이다. 주차장은 잡초로 뒤덮였고, 변변한 안내판조차 없다. 이미 복원된 생가는 없애 버릴 수는 없었는 지 최소한의 표지석과 초가 건물만 남아 있다. 능주관아(官衙)를 돌아서 그가 다녔다는 능주초등학교로 올라 갔다. 오르는 비탈길 양편으로 조성했다던 성장과정의 벽화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콘크리트 바닥에 있던 시대별 표지 발판은 파 내버린 흔적만 아프게 남아 있다. 이윽고 학교에 오르니 건물 벽면에 조각되었던 대형 초상 조각은 뜯어내 버리고 페인트를 해 버렸지만 그 흔적만 흉물스럽게 남아있었다.

느닷없이 육사교정에 있는 5개 흉상중에서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철거(?)하겠다는 황당한 주장이 시끄럽게 할 때 지방에서는 이런 일들이 자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일제 때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과 살얼음을 뚫고 직접 몸으로 만주나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 중에서 누가 더 힘들었겠는가를 판단하는 것은 독자 여러분의 몫으로 남긴다. 재외 동포가 800만이라고 한다. 각나라, 각계에서 입지를 이룬 수많은 동포들이 수구초심의 마음으로 고국으로 눈길과 사랑, 상생과 성취를 나누고자 한다. 그 입지한 곳이 현재(?) 어느 나라냐에서 사느냐에 따라 본국으로부터 그 평가를 달리 받는 다는 것은 이해도 안되지만 기가 막힐 뿐이다.

무등산 정상에는 천지인(天地人) 천왕봉, 지왕봉, 인왕봉 등 세 봉우리가 있다. 두 상봉에는 안보시설로 아직도 통제되었고, 운좋게 오늘은 인왕봉까지는 올랐다. 무등산은 아래에서 보면 엄마 젖가슴같이 푸근해 보여서 ‘엄마산’이라고도 불리운다. 정상에서 내려다 본 광주시내는 그날따라 마치 새 둥우리처럼 아늑해 보였다. 그 어딘가에서 노벨문학상이 잉태되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는 사실을 아침에 접하고 올라와서 그런 지 무등산만큼이나 마음이 배부르다.

박수 칠 줄 모르면 박수 받을 자격도 없다. 박수 쳐도 부족할 판에 지워버리는 일에 골똘하는 것은 국가적, 사회적 낭비다.

<강창구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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