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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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과 두꺼비

2024-11-11 (월) 이재순 인디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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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덥지근 더운 여름 주말이었다. 우주의 물방울이 자석처럼 얼굴에 붙어 내 삶의 무게를 녹아 버리듯 땀방울이 줄줄 이마에서 흘러 내리고 있었다. 손바닥만한 뒷마당의 채소 밭에 잡초를 뽑고 있던 엄마의 주위를 글렌은 수용소 보초를 서듯 맴돌고 있었다. 스무살 중반의 글렌은 잘생긴 다섯살 미만의 자폐증 장애인이다. 엄마의 모습이 보이는 곳에 있어야 마음의 안정을 찾는 평생 아기이다.

갑자기 두손을 공처럼 모으고는 내게 소리치며 달려온다. 한 손의 뚜껑을 열었을 때는 큼직한 두꺼비 한마리가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글렌은 자신이 잡았다며 자랑스레 씩씩거렸다. 어쩌나. 재수없이 잡힌 두꺼비의 생명이 오늘이 마지막이 될 줄도 모른다는 생각에 찜찜한 마음을 추스르며 나는 집안으로 향했다.

우선 큼직한 병에 담았다. 글렌의 손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첫 단계이다. 글렌은 두꺼비에게 중얼중얼 말을 걸었다. 해칠 의도가 없는 기쁨에 찬 말이었지만 두꺼비는 전쟁 포로가 된 공포의 순간이었음에 틀림없었다. 나는 글렌에게 친구처럼 이름을 지어 주자고 제안하고 ‘두두’라는 이름을 붙였다. 글렌은 대견한 듯 두두를 부르며 큰 병을 이리저리 들고 다녔다.


지나치던 형이 말했다. 얼른 밖에 내다 버리라고 툭 내뱉고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질색을 하며 안된다고 소리치는 글렌을 보며 나는 두꺼비 대변인이 되기로 했다. 나는 글렌에게 두꺼비 두두도 형이 있는지 물어 보자고 했다. 글렌은 묻고 나는 두꺼비 두두로 변신하여 죽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있어. 이름이 토두야” 얼떨결에 지어진 두 형제 ‘두두와 토두’의 이름에 나도 씩 웃음이 났다.

나는 분주히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토두의 동생 두두를 구출해야 하는 사명감에 온갖 꾀를 짜내고 있었다. 순순히 포기하지 않을 승리자에게 전리품을 내 놓으라고 으름짱을 놓기엔 실패작이 될일이 뻔하였다.

이번엔 다른 작전을 짜야했다. 갑자기 나는 코를 두 손가락으로 쥐었다. 숨을 쉴 수 없던 나는 입을 크게 벌리며 휴 하며 글렌에게도 해 보라고 권했다. 손으로 코와 입을 막은 글렌은 순식간에 킥킥거리며 손을 뗐다. 나는 두꺼비 두두가 그렇게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죽을 것 같다고 글렌에게 말하면서 발버둥 치는 두두의 시늉을 냈다. 두두는 병 속에서는 숨을 쉬지 못하고 풀밭에서만 편히 숨을 쉰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글렌은 두두가 담긴 큰 병을 가슴에 안고 밖으로 향했다. 투정하며 보채는 아기를 가슴에 안고 달래는 어머니의 모습처럼 애절한 따스함이 엿보였다. 풀 밭에 놓여진 두꺼비 두두를 둘러싼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숨을 죽였다. 두두가 숨을 쉬기를 기다렸다. 정신을 차린 두두는 서서히 꿈뜨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살았다! 나의 환호성이 끝나기도 전에 글렌은 다시 두두를 손으로 움켜 잡았다. 순식간에 병속에 갇힌 두두의 처참한 운명을 글렌은 알 도리가 없다.

우리는 다시 집안으로 향했다. 상추입을 뜯어 병속에 넣었다. 글렌은 자비의 손길을 폈다. 최소한 두두를 해칠 의도가 없다는 사랑의 표현이었다. 나는 왜 이런 이율배반적인 현실을 허용해야만 하는가!

다시 나는 두두의 대변인이 되었다. 두두가 엄마가 보고 싶어 울고 있다고 했다. 병에 귀를 대고 울음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글렌에게 엄마와 헤어질 때면 항상 발버둥 치며 울었던 기억을 상기시켰다. 글렌의 얼굴이 서서히 변했다. 글렌이 두두를 엄마에게 보내주면 어떻겠는지 의견을 물었다. 밖으로 향한 우리는 두두가 잡혔던 곳으로 향했다. “바이 바이” 손짓까지 하며 엄마 찾아 가라고 했다.

내 발걸음이 그날 처럼 가벼운 날은 드물다. 장애인 아들을 둔 어머니의 삶의 무게를 어디에 비교 할 수 있을까. 그날은 신나는 날이었다.

<이재순 인디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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