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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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50주년을 맞이하는 약사회

2024-09-24 (화) 차영대 워싱턴 약사회 초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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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50주년을 맞이하게 된 워싱턴 약사회는 10월중에 축하연을 갖게 된다. 어떠한 단체이든 자기 단체의 특성과 역사가 있지만 약사회는 다른 어떤 단체 와도 차별화되는 몇 가지 특성을 가진 단체이다. 당시 허숙자 약사의 부군이 운영했던 기독교 방송국(고 김영호 사장)의 방송을 통한 주선으로 출발하여 1974년 12월 21일에 버지니아 리 하이웨이 선상에 있었던 동락식당에서 창립된 동기는 이민 1세 한국면허 약사들이 미국면허 취득 기회의 장벽에 가로막혀 헤쳐 나갈 방법을 찾기 위함이었다.

창립과 동시에 서둘러 빠른 정보 소통을 통하여 동부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면허 기회가 주어진 뉴욕 주면허시험 준비를 위해 공동으로 수험준비에 착수했다. 그 때의 강의실은 워싱턴 DC의 한인회관 건물이었다.

한편 약사회는 면허 기회를 위한 시위를 통하여 미국 여론을 조장하는데 착수했다. 그것은 1976년 8월 3일 백악관 앞에서의 한인 이민사상 최초의 기회 균등 시위였다.
이 시위로 워싱턴 포스트, WRC방송 등 미국 언론에 면허 기회를 주지 않는 미 연합 약정국의 부당성을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한편 뉴욕 면허시험 준비도 뉴욕약사회와도 상호 협력하며 열심히 준비한 결과 합동 수험 준비에 참여했던 약사회원은 모두 2-3년 내에 뉴욕면허 시험에 전원 합격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당시 수험 강의에 수고했던 박현우 약사와 초창기 임원들의 열성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민 1세 약사들에게는 또다른 장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과 포화 상태의 뉴욕 면허소지 약사들은 취업이 전혀 불가능했다. 면허를 취득하고도 실업자의 위기에 몰리자 일부 약사들은 타주 면허를 위해 미국 약대에 들어갔고 일부 약사들은 연방 정부에 취업하였고 일부 약사들은 약국을 개업하였고 일부 약사들은 아예 세탁업이나 일반 사업자로 전향한 분도 있었다.

그 당시 뉴욕면허를 가진 제가 버지니아에서 알링턴 약국을 개업하면서 버지니아 면허 약사를 고용해야 했던 비 합리적인 시기였다. 저 역시 불합리한 상태로 10년간 운영했던 약국을 정리하고 연방 정부 소속 월터리드 국군 병원 약국에 취업하여 은퇴할 때까지 근무했다.

당시 메릴랜드에는 힐란델 약국, 리그스 메너 약국, 헐리우드 약국 등 3-5개 한국 약사 약국이 있었다. 이 시기는 약사들의 평생 생업을 굳히게 되는 시기였으며 창립 20주년까지의 약사들의 모습이었다.
그러던 중 여론의 압박의 결과로 뉴욕 면허를 다른 주 면허로 갱신할 수 있는 주가 차츰 늘어 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미 연합 약정국은 1984년도에 면허 자격시험 제도를 실시한다는 발표를 함으로써 약사들의 투쟁 10년 만에 미국 약사 면허기회가 주어지게 되었다. 그 당시 자격시험 준비를 위해 약사회는 수험준비물 자료수집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자격 시험은 1985년도부터 처음으로 워싱턴에서도 알링턴 소재 트윈 브릿지 메리옷 호텔에서 실시되었다. 이렇게 초창기 약사들의 약사회 조직과 투쟁 및 수험 개척의 시기를 수년간 거친 후 면허시험 준비와 면허취득 추구의 제2단계에 수 년 간을 거치고 취업을 위한 생업 추구에 나서는 제3단계에 수년간을 거치면서 제 4단계 정착의 시기로 안정되면서 그 연장 선상에 지금의 50주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워싱턴 약사회는 이렇게 4단계로 차별화되는 특수 직능 단체라 생각한다.
그 동안 약사회는 1994년도에 전국 조직을 활성화하여 매년 해외 심포지엄을 해 왔었고 한 지붕 세 약사 가정이 탄생하는 기쁜 소식도 있었는 반면 약국을 경영하면서 불행한 사고를 당한 사건도 있었고 지금까지 함께 하지 못하고 먼저 떠나버린 약사 가족들에 대한 슬픔과 안타까움도 있었다.

이러한 전쟁 같이 분주한 생활을 해 오면서도 워싱턴 약사들의 재능과 지도력은 매우 자랑스러웠다. 전 워싱턴 한인회 연합회 부회장 정갑진 약사, 전 워싱턴 문인회 회장 김행자 시인, 전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회장 장혜란 수필가, 박숙자 소설가 이 외에도 박사 학위를 받으신 박찬효 약사 등 많은 훌륭한 약사들이 주류사회 및 지역사회 활동에 참여해 왔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저 역시 메릴랜드 시민협회를 창립하여 시민단체에도 삼십 여년을 참여해 왔었다.

30대에 출발하여 80대로 이어온 파란만장한 이민 약사로 출발한 워싱턴 약사회를 뒤돌아 보면 앞만 보고 달려온 아쉬운 지난 50년 세월이 깨어난 꿈을 되새기는 것 같은 느낌으로 초창기에 함께 했던, 다시 만나 보고 싶은 정든 동지 약사들의 모습이 눈에 선해진다.

<차영대 워싱턴 약사회 초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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