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럼프 제재협박에 ‘기후변화 대응’ 세계 해운 탄소감축 중단

2025-10-18 (토) 09:4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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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온실가스 3% 책임…트럼프, 찬성국 입항·통상 제재 위협

▶ 美 ‘녹색사기 저지’ 자축…다자간 환경규제 후퇴·탈탄소 노력에 찬물

트럼프 제재협박에 ‘기후변화 대응’ 세계 해운 탄소감축 중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로이터]

유엔 산하 국제해사기구(IMO)가 추진해오던 해운 온실가스 감축 종합계획 채택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한 압박으로 중단됐다.

일단은 공식적으로는 '표결 1년 연기'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이 계획에 찬성투표를 하는 국가들에 강한 불이익을 주겠다고 공언하고 있어 내년에도 통과가 가능할지 불투명하다.

IMO는 17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본부에서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를 열어 '선박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중기조치' 채택 여부를 논의했으나 다수 회원국이 결정을 1년 연기하는 방안에 투표했다고 로이터·AFP·블룸버그 통신이 보도했다.


앞서 IMO는 올해 4월 제83차 해양환경보호위원회에서 이 조치를 승인했다.

규제안에 따르면 국제수역을 지나는 5천톤(t) 이상 화물선과 여객선 등 선박은 IMO가 정하는 선박 연료유의 온실가스 집약도 기준을 준수해야 하고 이를 어기면 운항하기 위한 부과금을 내야 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해상운송 부문은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량의 3%를 차지하는 산업이다.

이 규제안은 해상운송 부문의 순탄소배출량을 2050년까지 0으로 감축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이른바 '넷제로 프레임워크'의 일부였다.

IMO의 구상대로라면 이런 내용을 포함한 해양오염방지협약(MARPOL) 개정안이 2027년 3월부터 발효돼, 대형 선박들에 2028년까지 탄소배출량을 17% 감축할 의무가 부과될 예정이었다.

이 산업 분야의 대규모 협의체인 세계해운협의회(WSC)도 나라별로 파편적인 규제가 가해지는 것보다 전세계에 걸쳐 통일된 기준이 시행되는 게 낫다며 비용과 효율 면에서 이 구상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IMO가 추진해온 이 조치를 '글로벌 탄소세'라고 비난하면서 협약 채택에 찬성투표하는 나라들에게 미국 입항 금지, 비자 발급 제한, 통상 조사, 미국 정부 계약 금지 등 불이익을 주겠다고 공언해왔다.


중단 결정 전날인 16일 마이클 왈츠 주유엔 미국대사는 소셜 미디어 X에 "우리는 다른 나라들에게 우리와 같은 편에 투표해주기를 요청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심각한 결과를 맞게 될 것"이라고 썼다.

트럼프 대통령도 16일에 본인이 차린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IMO의 계획이 "녹색 환상에 쓰기 위한 신종 녹색사기 관료체제 신설"이라고 맹비난하면서 미국은 이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방식으로건 형태로건 형식으로건 준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IMO 회원국들은 며칠간 논쟁을 벌이다가 역시 이 조치에 반대해온 사우디아라비아가 논의를 1년 연기하자는 안건을 제출했으며, 회의 마지막날인 17일에 '1년 연기' 방안이 찬성 57표, 반대 49표로 통과됐다.

한 EU 관계자는 AFP에 "많은 나라가 미국의 압박으로 생각을 바꿨다"고 말했다.

아르세뇨 도밍게스 IMO 사무총장은 폐회사에서 "축하하지 말도록 하자"며 "우리가 다뤄야 할 걱정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캠벌대에 재직중인 해운산업 전문 연구자 살바토레 R 머콜리아노는 이번 결정이 "엄청나게 큰 놀라움"이라며 이번 주 초까지만 해도 계획 채택이 확실시됐다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설명했다.

이번 '1년 연기' 결정은 다음 달 브라질에서 열리는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를 앞둔 가운데 다자간 환경 규제 노력에 큰 후퇴로 여겨진다. 글로벌 해운업의 친환경화 및 탈탄소 가격 체계 마련을 위해 노력해온 유럽연합(EU), 브라질 등에도 타격이다.

EU 집행위원회 대변인은 성명에서 "유감스럽다"며 "2050년까지 국제 해운을 온실가스 넷제로의 길로 이끌, 야심 차고 과학에 기반을 둔 글로벌 프레임워크를 확보하는 데 굳건히 전념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바로 환영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X에 "또 하나의 엄청난 승리"라며 "그(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 덕분에 미국은 진보주의자들의 기후 프로젝트에 돈줄이 될 뻔한, 미국 소비자들에 대한 유엔의 대규모 세금 부과를 막았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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