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르포] ‘회장 실종설’ 캄보디아 범죄단지 배후그룹…간판도 철거

2025-10-18 (토) 09:5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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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영 정부 제재 발표 후 프린스 은행에 현금 인출 손님 몰려

[르포] ‘회장 실종설’ 캄보디아 범죄단지 배후그룹…간판도 철거

(프놈펜=연합뉴스) = 18일(현지시간)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중심가 센속에 있는 프린스 그룹 본사 앞 도로에 차량이 지나가고 있다. 2025.10.18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중심가인 센속에는 한국 건설사가 지은 주상복합 아파트가 있다. 1천세대가 넘는 비교적 큰 규모 단지다.

왕복 8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이 아파트 바로 맞은 편에 캄보디아 대기업 '프린스 그룹'(Prince Group)의 본사 건물 2개 동이 우뚝 서 있었다. 본사 건물 사이 뒤쪽으로는 나란히 늘어선 주상복합 아파트 3개 동도 보였다.

본사 1층 프린스 은행 앞에서 서성이자 현지인 경비원이 쏘아보며 다가왔다. "오늘(18일,현지시간)은 은행 영업을 안 하느냐"고 묻자 "토요일이라 문 닫았다"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옆 본사 건물 앞으로 옮겨 사진을 찍자 또 다른 경비원이 뛰어나와서는 "하지 말라"고 소리쳤다. 그는 "아파트를 보러 왔냐"고 물었고, "그렇다"고 하자 뒤쪽 사무실로 가보라고 손짓했다.

"여기서 왜 사진을 찍으면 안 되느냐"고 했더니 "(본사) 지침"이라고 짧게 답했다.

고층 건물 맨 꼭대기에 회사명과 함께 붙어 있던 프린스 그룹 로고 간판은 철거된 채 흔적만 남아 있었다. 이 그룹 경비원은 "간판 교체 작업을 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프린스 그룹은 캄보디아에서 대규모 사기 범죄 단지인 이른바 '웬치'를 운영해 막대한 부를 쌓은 것으로 알려진 회사다. 한때 이곳에서 가장 큰 범죄 구역으로 꼽혔던 프놈펜 인근 '태자(太子) 단지'도 프린스 그룹이 운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그룹 회장은 천즈(38)로 캄보디아 최고 실세인 훈 센 전 총리의 고문을 맡는 등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캄보디아 시민권을 가진 그는 카지노와 스캠 센터로 사용되는 웬치를 만든 뒤 대리인을 통해 운영에 관여한 인물로 알려졌다.

최근 그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현지 언론을 중심으로 실종설와 중국 송환설이 나오고 있다. 이는 최근 미국과 영국 정부가 천즈 회장의 프린스 그룹을 제재한다고 발표한 이후에 제기됐다.


미국 재무부는 프린스 그룹을 '초국가적 범죄조직'으로 규정하고서 천즈 회장을 비롯한 이 그룹과 관련해 146건의 제재를 시행한다고 지난 14일(미국시간) 밝혔다.

미 법무부도 천즈 회장을 온라인 금융사기와 자금세탁 등의 혐의로 기소했고, 유죄가 확정되면 최대 징역 40년을 선고받을 수도 있다.

영국 정부는 프린스 그룹을 비롯해 이 회사와 연계해 레저·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는 '진베이 그룹', 암호화폐 플랫폼 '바이엑스 거래소'를 제재 대상에 올렸다.

앞서 중국 당국도 프린스그룹이 사기 범죄로 불법 수입을 올린 것으로 보고 2020년 특별수사팀을 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린스 그룹 본사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후이원(Huione) 은행 지점 간판도 사라진 상태였다. 금융서비스 대기업인 후이원 그룹도 최근 미국 재무부에 의해 금융 제재를 받았다.

이 그룹은 사이버 범죄자들의 가상화폐 자금을 오랫동안 세탁해왔고, 북한이 탈취한 가상화폐 자금도 세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점 앞에서 만난 경비원에게 "왜 간판이 없느냐"고 묻자 그는 "건물 외벽 도색을 다시 하기 위해 간판을 뗐다"고 둘러댔다.

그는 "최근에 돈 찾으러 온 손님이 많았느냐"는 물음에는 "이번 주에 특히 많았다"고 말했다.

캄보디아에 15년 넘게 산 한 교민은 "최근 미국과 영국 정부로부터 금융 제재를 받자 간판을 뗀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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