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최형무 칼럼] 관료와 정치인

2024-03-21 (목) 최형무/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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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대통령 후보에 출마한 사람이 “언론은 인민의 적 (the enemy of the people)” 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한다면 국민들이 그에 투표하겠는가? 만약 그가 외국출신 이민자들이 미국의 “피를 오염시킨다”고 공개적으로 말한다면 유권자들이 그에게 표를 던지겠는가?

이같은 질문을 던져야 하는 현실이 지금 미국이 처한 상황이다. 그리고 유권자들의 한 절반 정도는 이 정치인을 지지한다고 한다. (트럼트가 위의 발언을 했다.)

언론을 적대시하는 발언은 민주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가장 근본적 필요 조건이기 때문이다. 독재 국가에서 독재자가 먼저 하는 일은 여러 이유를 들어 언론을 말로 공격한다.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하면 실제로 언론인을 체포 구금하고 언론사의 문을 닫게 한


다. 권위주의 국가에서 살아 본 사람들은 지도자가 언론이 인민의 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무슨 뜻인가를 안다. 그리고, 그것이 이민자가 됐든 어떤 다른 사람들이 됐든, “피를 오염시킨다”는 말은 나치 독일에서 쓰던 말이었다.

만약 현대의 민주주의 국가가 권위주의 국가로 선회한다면 국민과 인류에 미치는 영향은 과거의 독재국가에서 국민의 자유를 지배하던 정도와는 비교할 수 없다. 과학 테크놀로지의 무한 발달 때문에 국민에 대한 무한 통제가 가능한 시대가 됐다.

히틀러는 선거를 통해 집권했고, 경제가 피폐한 가운데 흔들리던 군중의 마음을 휘어잡는 선동 기술을 통해 악한 권력의 탑을 쌓아 나갔다.

관료라고 하는 말은 정부에서 월급을 받는 공무원인데, 그 중에서도 일반적으로 국가의 정책 결정에 큰 영향력을 가지는 이른바 정무직 공무원을 말한다고 한다. 관료주의는 종종 비효율성의 상징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정말 나라를 위해 일하는 관료들도 많다.

2020년 미국에서 트럼프와 추종자들이 대통령 선거 결과를 뒤짚어엎고자 했을 때 미국 정부의 여러 곳에 포진해 있는 “관료”들이 브레이크를 걸은 것이 사실상 혼돈 속에서 미국 민주주의를 지켜 냈다고 볼 수 있다.

관료와 정치인들간의 갈등은 어느 시대에서나 있어왔다. 정치인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나라를 위한 정책을 펼쳐 나가는데 관료기구가 이를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국가 운영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지켜 나가는데 관료가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연전에 한국의 한 지인이 임기가 보장된 고위직에서 일했는데, 선거로 정권이 바뀌자 임기를 채우고 나가야 하는지 아니면 사임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법에서 임기를 보장한 것은, 정권의 변화와 관계 없이 일의 연속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다.


법에서 정한 임기제의 뜻을 존중하려면 임기를 채우고 나가야되는데, 막상 그렇게 하면 새로 집권한 정권의 정치인들이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온갖 트집을 잡고 개인적인 흠집을 내서 쫓아낸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정치인들이 썩고 부패해서, 자그마한 권력을 최대한 이용해서 자기들의 위상을 과시해 보려는 것이다. 정치인이 됐든 관료가 됐든, 부패는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이미 입증된 것이다.

미국에서 부패의 문제는 종종 개인적 일탈이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정치인들이 국민을 제대로 이끌지 않고 국정 방향을 제대로 못 잡아가는 구조적 문제이다. 오래 전 정치 후진국에서 보이던 파당주의가 이제 미국에서도 판을 치기 시작했다. 국민들이 유언비어에 현혹되는 상황이 이제 어느 나라에서나 벌어지고 있다.

미국민 뿐 아니라 한국을 위해서도 세계를 위해서도 미국 민주주의가 살아 남아야 한다. 필자는 2백 수십 년 역사 속에서 여러 주요 위기들을 극복해 온 미국인들이 이 위기도 지나가게 하리라고 믿는다.

<최형무/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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