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사이드] 세계의 경찰

2024-05-01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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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민주주의 수호를 강조하는 미국이 세계경찰의 역할을 수행해온 것은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른다. 워싱턴의 좌우 양당 모두 주장해온 미국의 정체성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들어 트럼프를 중심으로 미국 우선주의를 훨씬 중시하는 여론이 뉴스를 도배하고 있다. 만약 트럼프가 대선에서 당선이라도 되면 과연 세계의 경찰노릇을 그만두고 내정에만 몰두할 수 있을까.

왜 미국은 매년 1조 달러 정도의 많은 국방비를 쓰면서 다른 나라의 전쟁에 개입하고 있는 것일까. 왜 전세계 수많은 미군기지에 군대를 파견하고, 세계의 경찰 역할을 자처하고 있을까. 일본으로부터 갓 독립해 한국전쟁을 몸소 겪은 세대에게 미국이란 존재는 사실상 구세주 같았다. 그래서 이 당시 세대는 대부분 미국에 큰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작 미국 보수를 대변한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이 세계의 경찰 역할을 계속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현재 공화당 대통령후보인 트럼프는 다른 나라 분쟁 해결은 미국이 져야할 임무가 아니라고 말한다. 즉 미군의 임무가 다른 나라들을 재건하는 게 아니라, 미국을 해외의 적들로부터 방어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의 발언은 최근 전세계가 열전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지금, 지정학적 안보지형에 심상찮은 파장을 드리우고 있다.

20세기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에는 미국은 세계 곳곳의 분쟁에 개입하는 경찰로서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어떤 식으로 나와도 누구 하나 입 뻥긋하지 못했다. 그나마 미국에 큰 소리 칠 수 있던 구소련은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미국이 그동안 지구촌 거의 모든 국제분쟁에 빠짐없이 개입한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 대부분은 미국의 경제적 이익 등에 관계된 것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이 지구촌 곳곳에 파고들어 모든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서로의 생각들을 금방 알게 되는 지금, 더 이상의 정보 사각지대는 없다.

국제관계 전문가들이 인터넷과 유튜브에 넘쳐나는 세상이다. 가자 주거지역에 무차별 폭격을 가하는 이스라엘의 비인도적 행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커지고 있는 것은 전세계인들이 실시간으로 진실을 잘 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2차대전 말경 핵폭탄을 2개 사용해 전세계에 핵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놓고 세계 경찰을 자처해온 미국의 경찰노릇은 지난 80년 동안으로 수명이 다한 것일까.
미국이 그동안 '민주주의 수호'라는 명분으로 자임한 경찰 역할의 정당성을 스스로 입증하려면 최소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의 빠른 평화적 종식을 만들어 내야 하지 않을까.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신흥 강국들이 동맹을 맺고 미국의 위치를 어떻게든 슈퍼파워에서 끌어내리려는 지금, 미국은 자신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입장이긴 하다.
더욱 문제는 안에서 물이 새고 있는 미국의 국내 상황이다. 미 하원은 지난주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그리고 대만을 포함한 지원 법안을 찬성 처리했다. 법안 내용은 군사 원조 명목의 950억 달러 규모다.

그러나 대통령 서명을 남겨두고 있는 이 법안에는 남부 국경의 불법 이주자 유입을 막기 위한 국경관리 예산과 국경 관련 조치는 없다. 그래서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 의원들이 이 법안에 적극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이라고 한다. 실제 수백만명으로 늘어나고 있는 무법천지 불법 월경자들을 막기 위한 남부 국경 통제는 언제 어떻게 해준다는 말일까.

어쩌면 바이든 민주당은 자신들의 무덤을 파고 있는 게 아닐까.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의 경찰' 역할을 그만 하겠다는 그의 정책이 이번 미국 대선의 최대 이슈가 될지도 모른다. 미국이 자국우선 고립주의로 회귀하겠다는 공약을 실천하는 순간 베트남 반전데모처럼 미국 대다수 유권자들로부터 응원을 이끌어 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영원히 갈 것만 같았던 미국의 세계의 경찰 역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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