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사이드] 타이타닉의 교훈

2024-03-20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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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침몰한 타이타닉호의 비극을 배경으로 1997년 개봉한 영화 ‘타이타닉’은 감독 제임스 카메론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이 영화는 많은 이가 사랑하는 감동 블록버스터이고, 주제가는 너무나 유명하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가 압권이고, 주제가를 부른 셀린 디온의 My Heart Will Go On...은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물론 영화는 실제 침몰사건을 토대로 만들었긴 했지만, 등장인물 ‘잭과 로즈’라는 가공의 캐릭터 중심 러브 스토리이다. 이 배에는 사회의 모든 인간 군상이 모였다. 미 상류층의 일원인 로즈는 정략결혼의 상대인 재벌 약혼자와 함께 타이타닉호에 승선했고, 도박으로 운좋게 타이타닉호에 탄 가난한 잭을 만나 짧은 로맨스를 즐기던 중 배가 침몰당하는 줄거리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난해에는 이 침몰한 타이타닉호를 탐사하려고 타이탄이라는 고급 잠수정을 타고 해저로 간 억만장자 5명이 모두 사망했다. 보물이라도 찾을까 하는 바람으로 타이타닉호에 접근했다는데, 약 487m 떨어진 지점에서 타이탄의 잔해가 발견되었다. 캐머런 감독은 이와 관련, 타이탄 잠수정의 비극은 타이타닉호 참사와 기이한 유사성을 보여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원조 타이타닉호는 1912년 영국에서 뉴욕으로 향하던 중 빙하에 부딪혀 침몰했다. 승객 1500여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름만 대면 알만한 당시 뉴욕의 최고 부호들도 포함되어 있다. 벤자민 구겐하임도 그중 한 명이다.

뉴욕의 명물인 구겐하임 미술관은 희생자 가족의 상속인이었던 페기 구겐하임이 설립했다. 그녀는 타이타닉호 침몰 당시 13살이었다. 아버지 벤자민 구겐하임의 막대한 재산을 20대에 상속받은 페기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고결한 죽음을 마음에 품고, 외부에서 보면 마치 하얀 달팽이 껍데기를 엎어놓은 것처럼 생긴 미술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은행가 출신의 철강부호였던 구겐하임은 곧 빠져죽을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우아하게 남겼다고 한다. 격식을 차린 연회복으로 갈아입고서 “죽더라도 젠틀맨처럼 죽고 싶다”고 생존자들에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타이타닉호에서 죽은 상당수는 1등석 부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희생시키면서 타인들을 살렸기 때문이다.

“신도 침몰시킬 수 없는 배"라고 과대 광고했던 타이타닉호는 그렇게 비극적인 사고를 겪었지만 기득권들의 감동적인 자기희생으로 미국인들을 감동시킨 대역전극의 스토리가 되었다. 한국에도 그런 상류층이나 기득권의 자기희생 정신이 있었으면 좋겠다.

안타깝게도 한국정치 뉴스를 볼 때마다 타이타닉보다는 세월호가 연상된다. 자기목숨부터 지키려고 했던 이기적인 선장이 제일 먼저 떠오르고 만다.

북한은 대한민국을 어떻게든 쓸어버리겠다는 일념으로 호시탐탐 노리기 일쑤인데... 여야 자칭 지도자들은 비대위다 혁신위원회다 하고 난리더니 이제는 후보 공천 문제로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도무지 말들만 번드르르 하지, 살신성인이나 수신제가의 모습은 조금도 볼 수 없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같은 말은 생각지도 못한다.

대한민국호 라는 거대 선박이 흔들리던 침몰하던 상관없다는 말인가. 구겐하임과 같은 재벌들은 심지어 동승한 집사나 직원을 자신들의 자식들을 돌보라고 구명보트에 태우고 자신들은 기꺼이 수장의 길을 택했다는데... 한국의 정치인들은 강대국 고래들 사이에서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정치가 아니라 밥그릇 싸움만 하는 새우일 뿐이라고 자조하는 인물들은 아닌가 묻고 싶다.

경제나 안보는 저리 가고 최악의 상황만 눈에 보이는 지금, 오로지 총선 표계산에 눈이 벌건 여야 정치인들에게 영화 타이타닉을 권하고 싶다.
중차대한 총선을 앞둔 지금 전세계 한인 디아스포라를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빅애플의 한 일원/거주자는 이렇게 외치고 싶다. “Don‘t jump the ship!” 배를 포기하지 말라고 .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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