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중순 바이든 대통령이 진 스펄링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에게 코로나19 경기부양안 시행의 감독 책임을 맡긴다고 발표했을 때 민주당 인사들 사이에선 의문이 제기되었다 : “왜 카말라 해리스가 아니지?”
얼마 후 3월 하순 바이든 대통령이 남부국경 이주자 물결의 근본원인 해결책 모색을 해리스 부통령에게 맡긴다고 발표하자 이번엔 또 다른 의문이 제기되었다 : “이게 무슨 의미지?”
‘이민’은 워싱턴 정치인들이 가장 기피하는 이슈 중 하나다. 친 이민을 자부하는 민주당에게도 까다롭기는 마찬가지다. 오바마 대통령 당시 공격적 추방정책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민운동가들은 아직도 그를 ‘추방 사령관’이라고 부를 정도다. 특히 오바마와 트럼프 대통령 때 ‘나홀로 밀입국’ 미성년자 급증과 함께 야기된 국경 위기는 난제 중 난제, ‘뜨거운 감자’다.
취임 두 달을 넘긴 바이든의 팬데믹 대처 및 경제를 비롯한 전반적 국정은 61%의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민은 예외다. 특히 미성년자 급증으로 인한 남부국경 사태에 대한 바이든의 대처엔 지지보다 반대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5일 발표된 AP통신과 NORC 공공리서치 센터 여론조사에 의하면 40%가 반대, 지지는 24%에 불과하다. 바이든이 취임 첫날부터 최우선 과제로 착수한 이민정책이 새 행정부의 ‘취약점’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전임 두 대통령이 성공 못한 국경 위기 해결의 중책이 해리스 부통령에게 첫 구체적 임무로 주어진 것이다. “바이든이 해리스에게 정치적 수류탄을 건넸다. 그녀는 해체할 수 있을까?”라는 폴리티코 분석기사의 제목이 해리스가 직면한 사태의 위중함을 말해주고 있다.
처음엔 해리스 역할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았다. 많은 미디어들이 ‘국경사태 해결 책임자’로 보도했다. 국경 위기 대처를 일임 받은 ‘사령탑’ 긴급 투입된 ‘소방수’라는 표현도 나왔다.
국경 상황이 심각해지자 백악관은 해리스의 임무가 국경 현장 대처가 아니라 밀입국 근본원인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라며 정확한 역할 정의에 나섰다. 해리스 참모들도 부통령의 임무는 “이민자 유입을 막을 전략을 개발하고, 멕시코는 물론 이민 행렬에 나서는 남미의 ‘북부 3국’인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와 관계를 개선하는 작업”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해리스는 이미 전반적 국경 상황과 연계되고 있다. 민감한 업무 정의에 대한 여론의 이해와 관심은 인색하고, 때 만난 공화당의 공격 세례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즉각 바이든의 해리스 임명을 때리고 나섰다. 해리스를 새로운 ‘국경 차르’ 바이든의 ‘국경 위기 관리자’로 못 박는 한편 자격미달의 ‘최악의 선택’이라고 폄하하는가 하면 “국경 책임자가 국경 현장에 오지도 않는다”며 거센 비난을 퍼붓기도 한다.
발표 직후 애리조나 공화당 주지사 덕 듀시는 “국경 문제에 관심도 없고, 심각한 위협으로 여기지도 않는 해리스”는 최악의 선택이라고 공격했고 또 다른 공화당 주지사 텍사스의 그렉 애봇은 해리스에게 보낸 서한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당신을 국경 차르로 임명했으니 난 당신에게 이 행정부의 국경개방정책이 초래한 위협과 도전에 대해 알리려 한다”고 통보했다.
톰 틸리스 연방 상원의원은 공화의원들과 리오그란데 강 지역을 돌아본 후 “이곳에 와서 위기를 인식하라, 당신에게 대처 책임이 있다”고 촉구했고 로나 맥대니얼 공화당 전국위원장은 “카말라는 어디 있는가? 바이든의 국경 대변인이 나타나지 조차 않는다…남부국경의 걷잡을 수 없는 위기 상황은 바이든의 문제이며 이젠 카말라 해리스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2022년과 2024년 선거를 겨냥한 공화당의 메시지 캠페인은 국경 대처가 “성공하지 못할 경우 해리스를 바이든의 실패한 국경정책의 얼굴로 만들려는 것”이라고 이민연구센터의 제시카 보간 연구원은 분석한다. 해리스 측근들의 우려와 같은 맥락이다.
해리스의 국경관련 임무에 대한 시각은 민주당 내에서도 엇갈린다. 대권 야망 가진 정치가에겐 중대한 도전으로 ‘위태로운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는 우려와, 정치적 위험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당면과제를 맡아 ‘책임감과 리더십을 보여줄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 기대다.
부통령 측근들은 국경 상황 악화가 그의 정치 미래에 타격을 줄 것으로 두려워한다. 그러나 이민2세 해리스가 균형 잡힌 사고와 경험으로 이 난제를 잘 해결할 것이라는 낙관론도 있다. 지난 8년 간 실패를 거듭해온 과제여서 현재 상황의 개선만으로도 ‘성공’ 평가가 가능하다는 기대다.
과테말라 대통령과의 통화 등 새로운 업무에 착수한 해리스 자신은 말을 아끼고 있다. 지난주 “정치적 위험을 우려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노우”라고 빠르게, 짤막하게 답했을 뿐이다.
앞으로 대선 출마가 기대되는 해리스에게, 통계적으로 성공보다는 실패 확률이 높은 국경위기 대처의 위험은 엄연한 현실이다. “적절한 대처로 사태를 진정시켜 간다면 엄청난 승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앞으로 3년 이상 계속된다면 국경 위기는 ‘정치가 해리스’를 계속 쫓아다닐 것이다”라고 이민정책연구소 앤드류 실리 회장은 분석한다.
위험이든 기회든, 국경 상황 대처가 부통령으로서 카말라 해리스의 첫 시험대인 것은 확실하다. 결코 만만해 보이지 않는 시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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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