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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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의 2인자’

2021-03-11 (목)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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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명의 ‘조’가 조 바이든 대통령에 이어 워싱턴 정가의 강력한 2인자로 떠올랐다. 양당 50-50 의석구도의 연방상원에서 최고의 스윙보터로 등극한 민주당 중도파 조 맨친 의원이다.

그의 막강 파워는 지난 주말 밤샘 표결을 강행하며 바이든의 1.9조 달러 코비드 부양안을 통과시킨 상원의 ‘금요 드라마’를 통해 확실하게 드러났다.

민주당이 시각 차이가 너무 큰 공화당과의 타협을 포기한 것은 이미 지난달 초부터였다. 공화당 협조 없이 과반수 찬성만으로 통과시킬 수 있는 예산조정 절차를 통한 단독처리를 추진해온 민주당 상원 지도부는 금요일인 5일 오전까지만 해도 무난한 통과를 자신하고 있었다.


민주당에서 가장 보수적인 맨친 등 중도파의 반대로 최저임금인상 항목도 부양안 패키지에서 완전 배제되었고,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연방실업수당도 주 400달러에서 300달러로 깎았다. 대신 진보파의 반발을 달래기 위해 실업수당 연장을 8월에서 9월말까지로 늘리는 한편 수당 1만200달러까지는 비과세로 하는 조항을 추가했다. 백악관도 지지한 혜택이었다.

그런데 표결에 앞서 본회의장으로 들어온 맨친은 ‘듣도 보도 못했던’ 비과세 조항에 깜짝 놀랐다. 반대하는 맨친에게, 이미 전달받고 동의한 줄 알았다는 지도부의 해명은 통하지 않았다. 전속력으로 진행되던 부양안 드라이브가 끼익- 급정거하면서, 바이든 어젠다를 자칫 무산시킬 수 있는 맨친의 파워를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다급해진 민주당은 그때부터 12시간 동안 맨친 설득을 위한 막후교섭에 전력을 기울였다. 여러 민주의원들이 번갈아 맨친과 대화를 계속했고 오후엔 바이든 대통령까지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맨친의 찬성을 확보한 후 투표가 시작된 것은 밤 11시나 되어서였다.

표결 지연작전에 나선 공화당의 수정안 쇄도로 밤새 끌던 부양안은 토요일 한낮에 통과되었다. 가족상을 당한 공화의원 한 명의 기권 탓에 50-49, 완전 당파적인 아슬아슬한 통과였다.

민주당을 초비상사태로 몰아넣은 것에 비해 맨친이 마지막 순간의 제동으로 얻어낸 것은 크지 않았다. 비과세 혜택 대상에 상한선을 두었고 실업수당 연장을 9월말에서 9월초로 단축시킨 정도였다. 그 이전의 실업수당 및 현금지원 대상 감축을 모두 계산해도 부양안은 액수가 별로 줄어들지 않은 채 1.87조 달러 규모로 통과된 것이다. 바이든의 첫 번째 주요 입법승리다.

부양안 입법 투쟁에서 바이든 못지않은 승자는 단연 맨친이다. 맨친의 반발에 상원은 한 순간 정지되었고 그의 표를 확보하기 위해 지도부는 그의 요구를 수용했으며 이 드라마를 계기로 그에겐 미디어의 조명이 쏟아졌다. 50-50의 구도가 계속되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보수적 민주당’을 자처하는 73세 맨친은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39포인트 차이로 압승을 거둔 공화당 텃밭인 웨스트버지니아의 3선 연방 상원의원이다.


양극화로 치닫는 상원에서 줄기차게 ‘초당적 합의’를 주장하는 이례적 존재인 그는 낙태나 총기규제 반대 등 공화당에 합류하는 표결을 꺼리지 않는다. 분노한 진보파의 비난이 쏟아져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때로 민주당과의 불협화음을 노출시키는 것은 강경보수 지역의 민주당 의원으로서 정치적 생존을 위한 이미지 관리일 수도 있다.

지난 10년은 그에게 좌절과 인내의 시기였다. 급진정책을 추구한 오바마와는 공통점이 거의 없었고, 트럼프는 맨친의 초당적 협조 노력을 무시했으며, 상원대표였던 민주당의 해리 리드나 공화당의 미치 매코널 모두 중도파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맨친에게 이제 기회가 온 것이다. 초당적 단합을 강조하는 바이든 대통령과 오랜 동료로 상원대표가 된 척 슈머가, 모두 그의 도움을 구하고 있다. 초당적 이미지를 과시하며 법안 생사의 결정권을 쥔 ‘이보다 좋을 수 없는’ 입지를 확보하게 되었다고 폴리티코는 분석한다.

맨친의 반대가 사실상 백악관 예산국장의 인준을 막았고, 앞으로 내무장관과 보건장관 인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 동료의원은 농담 섞어 그를 ‘전하(Your Highness)’라고 부르는가 하면, ‘무늬만 민주당’이라고 분개하는 리버럴 일부에선 ‘맨친 대통령’이냐고 야유한다. 당론을 이탈한 소신 투표를 서슴지 않는 ‘민주당의 존 매케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맨친의 영향력에 좌우될 주요 이슈 중 하나가 필리버스터 개정이다. 의사진행 방해를 뜻하는 필리버스터는 소수당이 상원의 최종 표결을 막기 위해 구사하는 절차상 전략이다.

60표 찬성이 있어야 필리버스터를 중단시킬 수 있는 규정이 계속되는 한 (예산조정 절차 없이는) 앞으로 바이든의 주요 어젠다 입법화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공화의원 10명의 지지 확보는 현실적으로 너무 힘들어서다. 이민, 기후변화 등 주요 어젠다 모두가 다 예산 관련도 아니다.

그러나 필리버스터를 폐지하거나 필리버스터 중단 규정을 60표가 아닌 과반수 찬성으로 개정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필리버스터 폐지를 완강히 반대해온 맨친이 최근 개정의 여지를 언급, 진보파의 기대가 솔솔 피어나고 있다.

필리버스터가 사라진다면 맨친의 영향력은 더욱 막강해질 것이다. 그러나 주요법안 통과에 60표 지지가 필요한 상원으로 계속된다면 맨친은 중요한 존재가 되지 못 한다. 자신의 한 마디에 정국이 요동치는 새로운 위상을 만끽하고 있을 그가 필리버스터 폐지나 개정 관련에 어떤 결정을 내릴지도 향후 정국에서 흥미로운 관전포인트가 될 것이다.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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