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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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보러 갔다가 예술에 흠뻑 취하는 해변

2020-05-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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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구나비치(Laguna beach)

▶ 시간의 숨결 고스란히 간직, 어릴적 본 영화 속 거리처럼 모든 건축물이 ‘앤틱’인 도시, 흥겨운 힐링을 선사하는 곳

캘리포니아의 해안선은 남부로 접어들면서 황금빛 백사장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비치(Beach)의 나라’가 된다.

특히 말리부에서 시작한 남가주 ‘비치의 행렬’은 엄청난 관광객이 몰리는 샌타모니카에서 절정을 이룬다. 비치의 연속선은 오렌지카운티로 내려가다 라구나비치(Laguna beach)에서 방점을 찍는다.

바다와 길은 그대로 이어지지만 분위기와 정취가 한순간에 바뀌는 바닷가 도시, 문화를 품에 안은 해변이 라구나비치다. 라구나비치는 젊은이의 전유물이 아니다. 백사장 위에서 발리볼을 하는 청춘들뿐 아니라 아기를 데리고 산책하는 젊은 부부와 손을 잡고 바다를 바라보는 노부부가 쉽게 눈에 띈다.


다운타운과 붙어 있는 비치에는 친절하게 나무바닥이 깔린 산책로가 마련돼 있다. 누구나, 아무 때나, 어렵지 않게 파도 소리를 들으며 태평양 옆을 나란히 걸을수 있다는 의미다.

양복을 입고, 하이힐을 신고도 마음이 내키는 순간 달려갈 수 있는 바다가 바로 라구나비치다. 호주머니가 가벼운 사람이나, 오랜만에 근사한 디너를 계획한 사람이나, 언제든 두 팔을 활짝 열고 환영한다.

그곳에는 그림과 음악 그리고 글이 기다리고 있다. 일년 내내 아트 페스트벌이 열리는 동네다. 화가와 사진작가들의 작품이 내걸리고, 갖가지 도자기 공예품이 전시되며, 그 사이사이를 기타와 봉고, 때로는 바이얼린과 첼로의 선율이 흘러 다닌다.

축제는 계속되고 예술을 향한 열정은 해변가 도시의 보이지 않는 품격을 고상하게 다듬는다. 라구나비치가 여느 바닷가와 사뭇 다른 얼굴을 갖는 배경이 이것이다.

비치 바로 앞 부드러운 해풍이 여과 없이 불어오는 삼거리에는 극장이 자리 잡고 있다. 모래사장에서 길하나를 건너면 울창한 가로수 그늘이 드리워지고 그윽한 레스토랑과 패션 점포들이 즐비하다.

문화와 자연이 서로 녹아들고 부유함과 소박함이 조화를 이룬다. 부자의 별장이 널브러져 있지만 가난한 예술가의 투혼이 여전히 살아 숨 쉰다. 갤러리가 이곳처럼 흔한 비치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라구나비치는 당초 아티스트의 조용한 바닷가 은신처였다. 이들은 예술가 조합을 이뤘고 1918년에는 최초의 갤러리가 들어섰다. 훗날 갤러리는 라구나 아트뮤지엄이 되며 상징적 유적이 됐다. 그러나 라구나비치는 1920년만 해도 인구가 300여명을 헤아릴 정도로 작은 어촌이었다.


고즈넉한 이 마을이 극적인 전환점을 맞은 것은 1번 퍼시픽 하이웨이의 개통 덕분이었다. 이전에는 오렌지카운티 평원과 바다를 잇는 좁은 계곡 길이 유일하게 외부로 오가는 통로였다. 태평양을 따라 남하한 퍼시픽 하이웨이를 따라 사람들이 자동차를 몰아 밀고 내려 온 것이다.

라구나비치를 찾는 여정은 ‘해적타워’(Pirate Tower)에서 풍미를 더한다. 파도가 철썩거리는 암벽에 바싹붙어 검은 색 돌로 쌓아올린 원형 타워는 처음 보는 이의 머리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더구나 이름이 ‘해적 타워’라니 신비함이 짙어진다.

‘해적 타워’는 빅토리아비치(Victoria Beach)에 있다. 라구나비치 다운타운에서 남향으로 10여분을 달리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오른쪽 주택가 절벽 밑에 가려져 있다.

비치로 가는 길도 비밀의 통로처럼 숨어 있다. 집과 집 사이에 조그만 계단이 빅토리아비치로 내려가는 길이다. 그나마 나무그늘에 가려져 잘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계단을 내려서는 순간 탄성을 자아내는 바다와 백사장 그리고 운치 넘치는 가옥들이 펼쳐진다. 바로 이곳에 ‘해적 타워’가 세워져있다. 마치 유럽의 고성에 자리 잡은 성탑 모양을 하고 있다. ‘해적 타워’는 남가주의 비치에서 마주친 ‘별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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