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세계보건기구가 코로나19 사태를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선언한 이후 거대한 공포가 지구촌을 뒤덮고 있다. 주식시장은 끝 모를 추락을 거듭하고 있으며 각국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침투를 막겠다며 빗장 걸어 잠그기에 나서고 있다. 미국도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비상사태 선포 후 셧다운 상태에 빠졌다. 코로나19의 여파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문제는 아직 최악의 상황은 오지 않았으며 언제쯤 사태가 진정될 수 있을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는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 일부 정치인들의 발언과 언론보도는 대중의 공포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합리적이라는 이미지를 가진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기자회견을 통해 “전문가들은 인구의 60∼70%가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될 것이라고 한다”고 말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었겠지만 쓸데없는 공포를 부추겼다는 비판을 피해가기는 힘들다. 보건당국을 인용한 최악의 시나리오 보도 내용은 떠올리기조차 싫을 정도로 끔찍하다.
대중들이 위험을 인식하는 패턴에 관해 획기적인 발견을 한 사람은 스타라는 이름의 미국 엔지니어였다. 지난 1969년 이 엔지니어는 원자력 발전으로 인해 사망할 확률이 스키를 타다 사망할 확률보다 낮은데도 대중들은 원자력 사고에 대해 훨씬 큰 공포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확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그 대답은 리스크 전문가들이 고안해 낸 ‘공포도 측정 공식’에 들어있다.
무엇이 인간에게 두려움을 안겨주는가를 오래 연구해 온 전문가들은 모든 요소들을 종합해 공포의 크기를 산출해 내는 공식을 만들어 냈다. ‘공포도=통제 불가능성+비 친숙성+상상 가능성+고통+피해의 규모+부당성’이 그 공식이다.
그런데 지금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는 공포의 크기를 결정하는 이런 요소들을 모두 다 갖고 있다. 질병 자체가 들어본 적 없는 신종이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감염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통제감을 갖기가 힘들다. 그리고 이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엄청난 사회적 경제적 여파를 매일매일 충격 속에 목격하고 있다.
이런 패닉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정치적 리더십이다. 리더십은 우리에게 공포를 다스릴 수 있다는 자신감과 영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투명성과 함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능력이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진보언론과 민주당이 상황을 악용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현실과 동떨어진 안일한 인식을 보였다. 방역의 골든타임을 놓치면서 미국은 그 대가를 지금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그런데도 극우언론들의 한심한 상황인식은 그대로이다. 폭스뉴스의 간판앵커인 션 해너티는 여전히 코로나19 사태를 ‘사기극’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극우의 전매특허가 되다시피 한 전형적인 ‘음모론’이다. 매일 밤 수백만 미국인들을 TV 앞으로 끌어 모으는 유력앵커의 이런 인식이 시청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두렵다. 악성 바이러스가 따로 없다. 이런 무식한 음모론이나, 필요 이상으로 공포를 조장해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선동이나 모두 다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차분하게 대처하는 자세이다. 지나친 공포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포에 빠질 경우 이성적 판단의 마비가 가장 먼저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위험을 너무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된다. 상황에 대해 걱정하는 마음을 갖는 것 정도가 가장 바람직하다.
‘걱정’은 긍정적인 작용을 하는 감정이다. 불확실하거나 유쾌하지 못한 상황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 뇌는 자극을 받는다. 그러면서 그 상황을 해결하거나 헤쳐 나갈 방법을 찾아내고 행동하게 만든다. 걱정은 우리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뇌가 작동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개인 위생수칙을 잘 지키면서 당분간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고 광기어린 군중심리에 휩쓸리지 않도록 자신의 생각을 잘 단속하는 것, 이것이면 된다. 1,700여 년 전 로마의 철학자이자 수사학자였던 락탄티우스는 “공포가 있는 곳에는 지혜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패닉에 빠져있는 오늘날 지구촌 구성원들 모두에게 건네고 싶은 조언이다.
yoonscho@koreatimes.com
<
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