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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가호’일까 ‘경고’일까?

2024-08-06 (화)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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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미국사회는 정치적으로 너무 병들어 있다. 양극화라는 진단만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적대적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정치적 견해와 입장이 다른 상대를 경쟁하는 라이벌이 아닌, 절멸해야 할 적으로 여기는 극도의 증오가 사회를 휘감고 있다. 지난해 뉴욕타임스 등 유력 언론들이 “현재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감성은 증오”라고 진단한 것은 민주주의를 질식시키고 있는 적대적 분위기에 대한 우려의 표현이었다. 이후 1년 사이 상황은 더 악화됐다.

10여 년 전만 해도 정치적으로 이렇게까지 살벌하지는 않았다.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관용은 존재했다. 우리는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에 패한 후 공화당 대선 후보 존 매케인이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패배에 아쉬움을 드러내면서도 “오바마는 괜찮은 사람이며 그가 대통령이 돼도 나라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며 정치의 품격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후 이런 관용의 규범은 급속히 허물어지고 정치판은 적대와 증오에 급속히 잠식돼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트럼프 같은 극우 정치인들의 등장과 득세가 자리하고 있다. 상대를 향한 이들의 독설과 막말이 국민들의 의식 속에 파고들면서 증오는 점차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증오라는 감정은 분노와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직접적 자극 없이도 무조건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다. 그리고 증오의 대상자에 대해 권력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선사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무능한 집단 사이에서 더 쉽게 확산된다.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증오는 필연적으로 두 가지를 초래하게 돼 있다. ‘정치적 폭력’과 ‘도덕적 판단의 마비’다. 최근 나온 상당히 충격적인 설문 결과들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PBS 뉴스아워와 NPR이 공동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 5명 가운데 1명꼴로 “미국을 제자리로 되돌리기 위해서라면 폭력도 불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젊은층 가운데는 그 비율이 무려 42%에 달했다. 지난 7월13일 트럼프를 저격했던 범인이 아직 대통령 선거 투표를 한 번도 해보지 못한 20살 청년이었다는 사실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또 중범혐의, 성 추문 등 비윤리적이고 불법적인 행위를 한 공직 후보를 지지할 수 있는가 묻는 ANES 설문조사에서는 공화당원의 62%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트럼프가 “뉴욕 5번가에 서서 누군가를 쏴 죽인다 해도 난 어떤 표도 잃지 않을 것”이라고 희대의 망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도덕성 불감 유권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저격 사건이 발생하자 모두가 한 목소리로 테러를 비난했지만 동시에 수많은 미국인들은 트럼프가 보여 온 정치적 행적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트럼프는 자신이 부추긴 증오와 폭력의 결과가 부메랑처럼 돌아온 것을 보고 있는 것”이라는 매정한 논평까지 나왔다.

지난해 콜로라도 대법원이 “콜로라도 경선 투표용지에서 트럼프 이름을 빼라”고 판결(연방대법원에서는 뒤집혔지만)한 것은 그가 지지자들을 선동해 2021년 1월6일 연방의회에 난입하도록 한 것을 반란행위라 본 때문이었다. 그는 2016년 첫 대선 출마 당시부터 이민자와 무슬림 등 소수자들을 겨냥해 증오의 씨앗을 뿌리며 캠페인을 벌였다. 실제로 당시 그가 유세를 벌인 지역에서는 일시적으로 증오범죄가 2.3배 늘었다는 보고도 있다.

이런 트럼프가 자신을 향했던 정치적 폭력의 일시적 수혜자가 되는 듯 보였던 것은 아이러니다. 테러 직후 그가 보인 모습이 노쇠한 이미지의 바이든과 대비되면서 트럼프의 대선 승리는 기정사실화 된 것으로 여겨졌다. 곧 이어 열린 밀워키 공화당 전당대회는 흡사 트럼프의 대관식 같았으며 그는 “신은 나의 편”이라며 의기양양해 했다. 또 우크라이나 젤린스키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서는 “난 여러분의 다음 미국 대통령으로서 전쟁을 끝낼 것”이라며 구제불능 나르시시스트의 면모를 드러냈다.

하지만 이미 끝난 승부처럼 보였던 대선은 바이든의 전격 후보사퇴와 카멀라 해리스의 등장으로 판이 바뀌면서 박빙구도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그러자 며칠 점잔을 빼던 트럼프는 다시 막말 모드로 돌아갔다. “바이든보다 쉬운 상대”라며 겉으로는 짐짓 여유로운 척 하지만 속은 타들어 가고 있는 것 같다.

2021년 연방의회 난입 폭동으로 시위대 4명과 이를 저지하던 경관 등 5명이 희생됐다. 하지만 과문한 탓인지 트럼프가 이에 대해 어떤 사과나 유감을 뜻을 표명했다는 애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트럼프를 겨눴던 총탄이 그의 귀를 스치고 지나 간 것은 ‘신의 가호’였을까 아니면 증오와 폭력의 씨앗을 뿌려온 그에게 던지는 ‘신의 경고’였을까. 신의 뜻이 무엇이었는지, 11월5일 우리는 그 답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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