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은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어쩌면 인류의 역사 전체가 전염병과의 투쟁의 기록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치명적인 병균은 예로부터 천문학적인 규모의 인명을 저승으로 보냈다. 한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기도 했고 문명의 무게중심을 옮겨놓기도 했다.
불교계도 타격을 입었다. 주요 행사와 법회가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사찰을 찾는 발길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다들 외부활동을 최대한 자제하며 사태가 조속히 수습되길 손꼽아 기다리는 분위기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에 앞서 메르스(MERS), 사스(SARS) 조류독감(Bird flu) 그리고 신종플루 등 바이러스에 대한 걱정이 2000년대 세상을 훑었다. 어쩌면 인류의 역사 전체가 전염병과의 투쟁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염병은 오랜 골칫거리였다. 백제 온조왕 때 “봄과 여름에 가물어 기근이 생기고 역병이 유행했다”는 ‘삼국사기’의 구절이 전염병에 관한 최초의 전언이다.
삼국시대 전염병 발생 횟수는 고구려 3회, 백제 6회, 신라 18회였다. 8~9세기 통일신라에서는 병을 고쳐주는 신통력을 갖고 있다는 약사여래불에 대한 신앙이 성행하였다.
고려시대의 역사서 ‘고려사’ 기록에 전염병은 역, 려, 역질 등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전염병 관련기록에서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이 보인다. 경종, 예종, 인종 등 왕들이 질진(疾疹)에 의해 사망한 사례가 보인다는 점과 전염병이 발생한 전후시기에 전쟁이나 군사작전, 대규모 사민(徙民, 주거를 옮김) 등으로 국가와 지역 간 교류가 활발하였다는 점, 그리고 흉년으로 인한 기근과 전염병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조선왕조실록’등 사료가 풍부한 조선시대에는 전염병 희생자의 숫자도 자세히 기록했다.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 사람들은 전염병을 천벌로 여기며 미신이 횡행했다. 가공할 바이러스 역신(疫神)들은 무수한 사람들을 참혹하고 억울한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의학기술의 눈부신 발전도 가져왔다. 불교에서는 병고로 두려움을 가진 이들에게 두려움을 없애주는 무외시(無畏施)를 베풀라 한다.
바이러스는 세상을 떠돌며 병을 옮기고 사람들 마음에 구멍을 내고 있다. 그 속으로 공포와 불안이 파고든다. 두려움은 혐오와 미움을 부르고 그것이 모두를 고통스럽게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염병을 완벽히 막을 방법은 없다. 병은 몸과 마음을 흔들고, 그로 인해 생긴 두려움은 모두를 흔든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마음이 개인을 넘어 공동체마저 넘보고 있다.
많은 이들이 전염병이 퍼지는 것을 막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을 돕고 있다. 어느 때보다 널리 퍼진 두려움을 걷어내고, 함께 혐오와 불신을 걷어내 자애와 연민의 마음으로 혼란하고 어렵고 힘든 시절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각자의 위치에서지혜롭게 잘 대처해 나아가길 두 손 모아 빈다.
어느 영화의 대사가 생각난다. ’우리는 해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래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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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향 스님 뉴저지 원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