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땐 이럴 줄 몰랐나?

2024-06-04 (화)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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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총선에서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을 받았음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전혀 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지난 2년 동안 그가 고집해 온 잘못된 국정기조를 바꾸고 민의에 좀 더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 총선을 통해 국민들이 낸 목소리였지만 대통령은 별로 개의치 않는 ‘오불관언’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1년9개월 만에 기자회견을 갖는 등 겉으로는 소통과 경청을 입에 올리고 있지만 그의 행위와 발언을 통해 나오는 메시지들을 살펴보면 “마이웨이를 가겠다”는 고집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대통령은 자신의 부인을 둘러싼 의혹들에 대한 수사 압박이 거세지자 검찰의 일선 수사책임자들을 기존의 ‘친윤’검사들에서 ‘찐윤’(진짜 친윤)들로 대거 교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수사 방향에 대한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인사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 과정에서 검찰총장은 철저히 배제됐다. 4년 전 자신이 검찰총장이던 시절 검찰인사에서 패싱을 당하자 “이러면 누가 힘 있는 사람에 대한 수사를 하겠느냐”며 반발했던 그였다. 그러더니 이제는 거리낌 없이 자신도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총선 후 여당 당선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여당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대통령이 가진 권한인 거부권을 적극 활용하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거부권은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권한으로, 국회에 대한 행정부의 견제 장치다. 그런데 삼권분립의 원칙을 지켜야 할 대통령이 행정부의 거부권을 대야 협상카드로 사용하라고 여당 의원들에게 노골적으로 주문한 것이다. 명색이 법 공부를 했다는 대통령의 헌법인식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총선 후 대통령이 보이고 있는 태도에 보수언론들도 큰 위기의식과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일제히 강한 논조로 대통령에 대한 실망과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다음부터는 이런 대통령을 뽑지 말아야 한다”는, 거친 분노가 가득한 칼럼을 내보낸 언론도 있다. 이 칼럼은 총선에서 건진 게 하나 있다면 “아, 다음에는 이런 대통령을 뽑아선 안 되겠구나”라는 각성을 유권자들이 진지하게 했다는 것이라며 대통령을 대놓고 직격했다.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을 지지하고 엄호했던 데 대한 후회인 셈인데 뒤늦은 반성이 무반성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1년 대권도전 선언 후 보인 일련의 모습은 그가 전혀 준비되지 않은 대권후보임을 확인시켜주는 행보들이었다.

그의 생각은 전혀 정제되지 않았으며 이슈들에 대한 이해도와 인문적 소양은 낮았다. 태도 역시 불량했다. 그러면서 각종 설화가 잇달았다. 국가를 이끌어가기에는 역량과 소양이 부족하다는 게 너무나도 명백한 것을 물론 별로 깨끗해보이지도, 정의로워 보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보수언론들은 이런 사실을 철저히 외면했다.

나는 당시 칼럼을 통해 윤석열 후보가 그의 당선을 통해 이익을 챙기려는 일부 보수언론, 그리고 정치인 등 ‘작전세력’에 의해 키워진 거품 가득한 인물임을 지적하고 보수 대통령을 원하는 유권자라면 다른 후보들을 살펴볼 것을 조언한 바 있다. 어떤 인물에게 국가 권력이 위임 되느냐 하는 것은 단순한 정권교체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 2년 그러한 우려는 기우가 아니었음이 확인됐다.(그의 지지율은 현재 20%대에 겨우 턱걸이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여러 분야에서 너무 자주 아마추어리즘을 노정해 왔다.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부인 김건희 여사의 봉하마을 수행원 논란이 일자 “대통령을 처음 해보는 것이기 때문에…”라며 얼버무리기도 했다. 수해 등 국가재난이 발생했을 때 그가 보여준 태도 역시 국가 컨트롤타워라기 보다는 ‘회사원’에 가까운 것 같다는 비판을 받았다.

축구선수로서뿐 아니라 족집게 예측으로도 명성을 얻은 이영표 해설위원은 월드컵에서 부진한 한국대표팀을 향해 “최고의 무대인 월드컵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라고 돌직구 일침을 날린 적이 있다. 이런 일침이 가장 엄중하게 적용돼야 할 자리는 바로 국가지도자이다. 대통령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다. 그런데 지난 대선에서 이런 사실을 잊거나 외면한 언론과 유권자들이 너무 많았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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