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 정치에서 국가 지도자들의 ‘위대함’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덕목이 됐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별이 더욱 빛나 보이듯 위대한 리더십은 국가적인 위기 속에서 빛을 발한다. 미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인물들은 예외 없이 엄청난 국난을 슬기롭게 극복한 지도자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 위대한 리더들의 등장을 요구하던 시대적 상황과는 많이 다르다. 위대한 리더들의 등장을 가능케 해주었던 필요조건이 주어지지 않은 현대의 대통령들로서는 자신들에 대한 박한 평가에 대해 서운함을 느낄 법도 하다.
하지만 이것만을 더 이상 위대한 정치 리더들을 찾아보기 힘들어지게 된 이유의 전부라 할 수는 없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모든 것이 양극화되고 점차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사회·정치적 현상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데올로기나 행동의 경향이 극단적으로 치우친 상태, 곧 사회의 평균적 통념에서 심하게 먼 상태”가 ‘극단주의’의 사전적 의미다. 달리 말한다면 ‘극단주의’의 만연은 국가와 사회의 균형추 역할을 해주어야 할 중간지대의 소멸을 의미한다. 그러다 보니 통합을 이끌어낼 만한 정치적 토양은 점차 사라지고 결과적으로 당파적 리더들만 난립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의 구성원들이 함께 공유하면서 당연하게 여기는 가치관을 우리는 ‘상식’이라 부른다. 상식은 단편적이고 잡다한 지식이 아니다. 그보다는 가치판단이 전제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분별력과 양식을 의미한다. 그런데 갈수록 사회와 정치가 파편화되고 극단화되면서 이런 상식이 실종되고 있다. 이처럼 상식이 사라진 공간에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은 몰상식하고 비상식적인 지도자이다.
상식적인 지도자란 좋은 리더십의 기본이 되는 보편적인 자세와 정서를 가진 사람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소통’과 ‘경청’ 그리고 ‘공감’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다 국가가 잘못했을 경우 그것을 시인하고 사과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용기’까지 갖추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지난 2년여 동안 이런 상식과는 너무 동떨어진 국가지도자를 경험해오고 있다. 거부권을 밥 먹듯 행사하고, 국회가 인준을 거부한 하자투성이 인물들의 임명을 30번 가까이 강행하는 그의 오만에서는 제왕적 인식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또 그가 내세웠던 ‘공정과 상식’이라는 슬로건은 오로지 대통령에 당선되려 던진 ‘미끼상품’임이 드러났다.
대통령은 엄청난 재난과 참사에 희생된 국민들과 그 가족들에게 온전히, 그리고 진정성 있게 공감을 보인 경우도 없었다. 지난 총선에서 참패한 후에는 아주 잠시 몸을 낮추는 것처럼 하더니 곧바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남 탓, 전임 정부 탓만 하고 있다. 오죽하면 한국의 대표적 보수신문 논설실장이 얼마 전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지지자들로서는 속된 말로 X팔리는 심정”이라고 탄식하는 내용의 칼럼을 썼을까 싶다.
어떤 큰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수많은 징후가 반드시 나타나게 돼 있다. 상식과 거리가 먼 대통령의 인식과 됨됨이를 엿볼 수 있는 조짐은 선거 전 상당히 많았다. 그의 정제되지 않은 거친 발언들도 그랬고, 무엇보다 그가 손바닥에 ‘왕’(王)자를 쓰고 대선 토론회에 나온 모습이 TV화면에 잡힌 것은 상식과는 동떨어진 그의 바탕을 보여준 행동이었다. 그럼에도 많은 국민들은 이것을 외면했다. 몰상식한 지도자는 이처럼 상식을 외면한 국민들의 선택을 통해 등장한다.
한 달 후면 미국은 앞으로 4년 동안 국가를 이끌어가게 될 지도자를 선택하게 된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누구를 지도자로 선택하느냐는 공화국의 운명과 관련해 절대적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11월대선 결과에 미국 민주주의의 미래가 결정적인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많은 정치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이들의 우려 섞인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 미국은 ‘새로운 권위주의적 대통령의 시대’(a new kind of authoritarian presidential order)로 들어설지 아닐지를 선택해야 하는 중대한 역사적 순간에 놓여있다.
우리가 원하는 대통령은 구국의 지도자 같은 대단한 인물이 아니다. 위대한 통합의 리더까지는 못돼도 국민들의 눈으로 보고 국민들의 마음으로 느끼려 하는 상식적인 대통령이면 족하다. 막말과 허위 주장들을 쏟아내며 끊임없이 국민들을 갈라치기하는 분열적 인물만 아니면 된다.
그렇다면 이 두 갈래 길 가운데 우리가 어떤 길을 가야 할지는 자명해진다. 상식을 외면했던 한국의 선택이 미국 유권자들에게 ‘반면교사’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보게 되는 것은 잘못된 선택이 가져올 후과가 얼마나 끔찍한지를 생생히 목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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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