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실시된 사회연구조사에서 믿는 종교가 없다고 밝힌 미국인은 5%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비율이 계속 늘더니 올 퓨 리서치 조사에서는 무종교라고 응답한 미국인이 30%에 육박했다. 50년 사이에 무려 6배가 늘어난 것이다.
이 같은 미국사회의 급속한 탈종교화는 산업화와 세계화, 그리고 기술의 발달에 따른 세속화가 초래한 자연스럽고도 불가피한 현상으로 해석돼 왔다. ‘공감의 시대’ ‘노동의 종말’ 같은 방대한 저작물을 통해 현대사회 진단과 미래 예측을 해오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 지성인 제러미 러프킨은 “자기표현에 별다른 장애가 없는 수평적 선진국가에서 엄격한 경전과 공동체의 유대, 그리고 낡은 신학적 의식 등으로 짜여진 종교적 위계가 점차 설자리를 잃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며 이를 ‘종교의 황혼’이라 규정한다.
미국에서는 아무런 종교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을 ‘넌스’(Nouns)라 부른다. ‘넌스’ 가운데는 본래부터 종교적 연고가 없는 사람들도 있지만 제도적 종교에 몸을 담거나 열심이었다가 이를 등진 사람들도 많다. 이런 사람들은 ‘던스’(Dones)라고 부른다. 기독교의 경우 이런저런 이유로 교회를 떠나는 미국인들은 연간 3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종교는 바로 ‘무종교’(No Religion)”라는 말은 이런 급속한 탈종교화 현상을 압축적으로 표현해준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나온 ‘한국인의 종교생활과 신앙의식’ 조사에 따르면 종교가 없다고 밝힌 한국인의 비율은 무려 63%였으며 종교가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37%에 불과했다. 2002년 이 비율이 57%였던 것을 감안하면 종교를 떠나는 사람들이 정말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 것이다. 개신교인의 비율은 15%로 10년 전에 비해 7%포인트가 하락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종교를 아예 갖고 있지 않거나 떠난 사람들은 종교에 대해 적대적일 것이란 예단과 달리 이들은 종교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이라는 사실이다. 퓨 리서치 조사에서 무종교 미국인들의 56%는 ‘높은 곳의 절대적 존재’를 믿는다고 밝혔으며, 67%는 인간에게 영혼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절반 이상은 분열과 비관용을 조성하는 일부 종교의 폐해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와 목적성을 선사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긴다고 밝혔다. 무종교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종교를 증오하거나 문젯거리로 보지는 않는다. 단지 정치의 영역에서든 사적인 삶에서든 종교를 해결책으로 보지 않을 뿐이다.
또 세속화된 무종교인들은 시민으로서의 태도나 도덕성에 있어 종교인들만 못할 것이란 일부 종교단체들과 지도자들의 주장 역시 사실과 다른 것으로 조사됐다. 자원봉사나 투표 참여, 공공 이슈에 대한 관심 등에 있어 이들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수준의 의식과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발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북유럽처럼 종교가 형식화되면서 실질적으로는 신을 믿는 비율이 가장 낮은 나라들일수록 번영과 평등, 자유, 민주주의, 여권, 인권, 교육정도, 범죄율, 기대수명 면에서 가장 ‘건강’하다는 주장을 펴는 사회학자도 있다. 클레어몬트 피처 칼리지의 필 주커먼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분명 제도적 종교는 점차 외면 받고 있지만 그것이 곧 영성의 약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영성을 갈구하고 추구하는 사회적 트렌드는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글로벌 학술 프로젝트로 실시되는 ‘세계 가치관 조사’는 지난 1981년부터 영성훈련에 대한 의식변화를 추적해오고 있다. 인생의 의미나 목적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편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해마다 계속해 늘어나고 있다. 나라별로 예외 없이 그렇다.
그렇다면 종교의 미래는 어떨까. 일단 전망은 그렇게 밝아 보이지 않는다. 튜브에서 한번 짜낸 치약은 다시 집어넣을 수 없듯 세속화에 따른 탈종교화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라는 비관적 전망이 대체적이다.
탈종교화와 무종교인의 증가는 세속화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긴 하지만 이것만을 탓할 수는 없다. ‘으뜸 가르침’이라는 종교가 본령에 어긋나는 모습을 보여 온 것에 따른 자업자득의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 특히 극우정치와 결탁한 일부 기독교의 행태는 많은 젊은이들의 종교이탈을 초래해 왔다. 제도적 종교들의 처절한 자기반성과 성찰 없이는 ‘황혼기’로 가고 있는 추세의 반전을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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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