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만한 권력과 국란의 함수관계

2020-03-02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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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죽어가고 있다’-. 21세기 들어 유행하는 화두다.

“권위주의 체제가 기승을 떨고 있다. 포퓰리스트들이 날로 득세하고 있다. 이와 함께 민주주의는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 일단의 하버드 대학교수들도 같은 경고를 던지고 있다.

그 반증인가. 사람들은 거리로 뛰쳐나오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또 유럽에서. 전 세계 47개국에서 격렬한 시위가 발생했다. 지난해의 상황이다.


올해 들어서도 이미 칠레, 레바논, 이란, 홍콩, 인도, 프랑스 등지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 분노한 시민들의 거리시위는 세계적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타임지는 앞으로 2년 동안 전 세계 125개 국가에서 시위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보면서 전 지구촌적인 불안상황은 이제 ‘뉴 노멀(new normal)’이 되어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버드대학의 휴먼 서베이스(HUMAN Surveys)의 최근 연구조사도 비슷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지난 25년 동안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은 계속 높아져 민주주의에 대한 염증이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번져나가고 있다는 것.

무엇이 그러면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족, 더 나아가 환멸을 불러오고 있는가. 네 가지 p로 시작되는 단어들이 그 요소로 지적됐다.

그 첫 번째는 양극화(polarization)다. 민주주의 선진국 중 1990년대 이후 가장 정치적으로 양극화가 심화된 나라는 미국으로 이와 비례해 미국인의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족은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이 이 연구보고서의 지적이다.

두 번째는 일종의 정치적 마비증세(paralysis)다. 시민들은 정치적 진공사태를 혐오한다. 그 전형적 케이스가 영국이다. 브렉시트를 둘러싸고 영국의 내각은 장시간의 교착상황에 빠졌다. 그 결과 민주주의에 대한 무기력증세 더 나가 혐오감만 커졌다는 것이다.

부패 혹은 스캔들(perfidy)이 세 번째로,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족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요소로 지적된다. 브라질 같은 ‘이머징(emerging) 민주주의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요소가 바로 심각한 부패, 스캔들로 인한 정치적 빈사상태로 이탈리아를 제외하면 민주주의 선진국가에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네 번째는 정치적 무력감(powerlessness)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그 선거에 부정이, 돈이, 권력이 개입한다. 이처럼 선거과정에서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을 때 시민들은 정치적 무력감과 함께 민주주의에 대해 환멸까지 느끼게 되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좀먹는 요소들을 열거하다보니 떠올려 지는 것이 있다. 한국의 정황이다. 정치적 양극화(polarization)는 말할 것도 없다. 정치적 마비증세(paralysis)도 여간 중증이 아니다. 부패와 스캔들(perfidy)로 찌들었고 사람들은 정치적 무력감(powerlessness)에 치를 떤다. 이게 대한민국의 현주소로 보여 하는 말이다.

미국의 양극화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이 한국의 정치적 양극화다.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집권세력은 ‘토착왜구’ 등 선동적 언어구사와 함께 노골적으로 편을 갈라왔다. 그러다보니 난무하는 것은 진영논리뿐이다. 그 극단의 편 가르기가 조국파동이다. 우리 편이면 무슨 파렴치한 짓을 해도 관계없다는.

‘역대 최악이었다.’ 20대 국회에 대한 국회 스스로의 평가다.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패스트 트랙으로 빚어진 폭력 사태로 식물국회가 됐다가 나중에는 동물국회로 전이됐다. 정치적 마비증세도 이런 마비증세가 없는 것이다.

부패 혹은 스캔들, 그리고 정치적 무력감. 이 부문에서도 대한민국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태양광 커넥션에서 신라젠, 라임펀드의혹 등 언제라도 초대형비리로 번질 수 있는 사건들이 줄서 있다. 거기다가 청와대의 조직적인 울산지방선거 개입혐의로 전직과 현직의 청와대 사람들이 떼로 기소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첨가된다. ‘권력의 턱없는 오만’이 그것이다. 자칫 탄핵의 사유가 될 수 있는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에 대해 대통령은 사과는커녕 한마디 말도 없다. 국민은 아예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여기서 새삼 한 가지 질문이 던져진다. 민주주의를 좀먹고 있는 요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작동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권력은 아주 오연한 자세로 턱짓만 하고 있다. 그럴 때 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국란(國亂)이다. 우한폐렴 창궐, 코로나 재앙이 그것이다. 대한민국이 침몰 직전의 ‘세월호’가 되고 만 것이다. 안이하고 무능했다. 그 권력이 중국 눈치만 보다가 대한민국을 중국과 ‘전염병 공동체’로 만들었다. 대한민국은 코로나로 포위돼 스스로 국제적 ‘왕따’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대통령 문재인의 판단력 결핍증세다. 권력주변의 사람들도 그렇다. 무지하다. 무신경이다. 그러면서 권력에 취해 있다. 그뿐이 아니다. 코로나 재앙 책임을 특정 종교집단에 떠넘기는 발언만 일삼는다. 그렇게 무책임할 수 없는 것이다.

무능한 주제에 오만하기만 한 권력. 그 권력에 결국 민심은 폭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탄핵하라’는 청와대 청원이 100만을 넘어 200만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2020년 4월15일은 대한민국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날이 될 것인가. 아니면….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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