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1930년대를 방불케 하고 있다고…

2024-04-22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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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공격, 요인 암살. 은밀한 공격. 그리고 테러…. 그림자전쟁(shadow war)에서 동원되는 수단들이다. 이 그림자전쟁에도 불문율 비슷한 게 있다. 선전포고를 하지 않는다, 정규군을 동원하지 않는다, 등등이 그것이다.

1979년이었던가. 호메이니가 이끄는 이슬람 시아파 근본주의 세력이 팔레비 왕조를 축출하고 이란의 정권을 거머쥔 해가. 호메이니는 테헤란 입성과 함께 이스라엘을 ‘이슬람의 적’이자 ‘거대 사탄(미국)에 기생하는 작은 사탄’으로 선언, 공식관계를 단절했다.

그리고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침공을 계기로 이란은 시아파 무장 정파인 헤즈볼라를 출범시켰다. 그림자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이란이 핵개발에 나서면서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이스라엘은 지도에서 지워져야한다’- 이란회교혁명정부가 내건 표어로 그림자전쟁은 더욱 치열하게 전개돼왔다.

지난 1일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공습 사태가 발생했다. 헤즈볼라. 하마스, 예멘의 후티 반군, 그리고 시리아, 이라크 등지의 시아파 민병대 등을 동원해 ‘대리전(proxy war)’을 전개해온 이란에 대항해 이스라엘이 편 맞불 형식의 공세가 이 공습으로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수뇌부 상당수가 사망했다.

그리고 4월 13일. 이란은 공개적으로 ‘보복’을 밝힌 지 2주 만에 이스라엘 본토를 겨냥해 300여발의 미사일·드론 공격을 감행했다. 이란이 사상 처음 이스라엘 국가와 영토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가해온 것이다.

그리고 6일 후 이스라엘도 보복공격에 나섰다. 이란 중부 이스파한 일대를 공격타깃으로 골라 수발의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 지역에는 공항과 군 기지, 핵시설 등이 있고 이란이 지난 13일 이스라엘에 미사일과 드론을 발사한 곳 중 한 곳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불문율은 깨졌다. 수 십 년간 전개되어 온 두 나라 간의 그림자전쟁은 급기야 전면전 양상으로 번져가고 있다.

표면에 나서는 경우가 좀처럼 없었다. 비굴하다시피 뒤에 숨어서 대리전을 교사해왔다. 그런 이란의 회교혁명정권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대놓고 선전포고에 가까운 성명과 함께 보란 듯이 대대적 공세를 펼친 것이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불러왔나.

‘이란이 핵무장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시그널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일각에서의 진단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갈등. 이는 각각 별개의 사건이 아닌, 한 거대 스토리의 일부로 바라보는 게 워싱턴의 요즘 공통적 시각이다.’ 워싱턴포스트의 지적이다.

이는 다른 말이 아니다. 보다 심층적인 원인은 우크라이나 전쟁이후 일어온 중차대한 지정학적 변화에서 찾아진다는 것이다.

유라시아대륙의 권위주의세력의 연합전선 구축, 중국-러시아-이란-북한의 밀착관계가 바로 그 지정학적 대변화다. 이 연합전선 가담과 함께 이란의 전략에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에 가까운 일대 변화가 일고 있는 것으로 어틀랜틱지는 진단하고 있다.

이란제 드론이 매일 밤 우크라이나 도시 상공을 휘젓고 다니면서 방공망을 흔들어 놓고 있다. 또 이란은 러시아의 드론 제조공장 건설도 돕고 있다. 이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수행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이란은 최신 러시아 무기를 대량 구입,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비해 방어망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이란과 러시아는 사실상 전략적 동맹관계에 들어섰다는 것이 워싱턴포스트의 분석이다.

거대한 지정학적 전환기에 이루어진 이란의 대대적인 이스라엘 공격. 이는 숨겨진, 그러나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것이 이어지는 어틀랜틱지의 진단이다.

유라시아대륙의 독재세력들은 점차 공공연한 폭력행사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 중국의 남중국해서의 도발에서 볼 수 있듯이. 그도 모자라 걸핏하면 핵 위협도 해댈 정도로 호전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 이게 그 메시지의 하나다.

이제 그들의 때가 도래했다는 믿음으로 이들 독재세력들은 단합돼 있고 서방은 경제적으로는 부유하지만 분열돼 있고 무기력해 항전의지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 이란의 대대적 공격이 던져주고 있는 또 다른 메시지다.

이 같은 망상에 사로잡혀 서방세계 분해를 목표로 여러 전선에서 동시다발적인 도발을 꾀하고 있다는 거다.

관련해 새삼 소환되고 있는 것은 1930년대 2차 세계대전 직전의 상황에 대한 암울한 기억이다. 군국주의 일본은 중국과 전쟁을 벌였다. 파시스트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를 침공했고 히틀러의 나치독일과 스탈린의 소련은 폴란드를 침공, 분할 점령했다.

각기 별개의 전쟁으로 보였다. 그러나 결국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유라시아대륙의 독재세력 연대에 힘입어 과감히 전개되고 있는 이란의 대대적 공격. 바로 이 프레임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 내려지는 결론이다.

여기서 새삼 한 질문이 떠올려진다. ‘대한민국’호의 장차 진로는 어느 방향을 향해 갈까하는 것이다. 중-러-이란-북한의 밀착으로 한반도 정세는 이미 태풍영향권에 진입했다. 그런 마당에 4.10 총선은 종중친북세력의 압승으로 낙착됐다. 그러니….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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