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악의 세력 연합전선 구축, 그 결말은…

2024-05-06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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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이었던가. ‘악의 축(Axis of Evil)’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때가. W. 부시 대통령이 이란, 이라크, 북한 세 나라를 테러지원국으로 지칭해 한 말이다.

‘악의 축’이란 말을 특히 애용(?)한 사람들은 W. 부시 비판자들이었다. 2002년 연두교서에서 ‘악의 축’ 연설을 하고 그 다음해 W. 부시는 이라크침공을 단행한다. 결국 실패로 끝난 그 정책의 무모함을 비꼬는 데 이 말은 주로 사용됐었다.

이후 20여 년의 세월과 함께 세상은 달라졌다. 그리고 이 말이 다시 소환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섬뜩한 진실이 담긴 메시지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악의 축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악의 축이 지배하는 사태를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된다’ 등등 워싱턴 안팎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바로 그렇다.


이 새로운 ‘악의 축’의 태동과 이 세력의 도전, 그 위험성을 일찍이 지적하고 나선 사람은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이다. 중-러-이란-북한이 한 블록을 형성. 동시도발을 해올 때 미국은 수십 년래 보지 못했던 중차대한 안보위협에 직면하게 될 것이란 경고를 했던 것,

원조 ‘악의 축’도 충분한 골칫거리였다. 그러나 그 파워는 상대적으로 미약한 편이었다. 원조 ‘악의 축’ 일원인 이란과 북한에다가 그 종주국 격인 러시아와 중국이 가세된 오늘날의 새로운 ‘악의 축’은 그 세력이 훨씬 강한데다가 더 위험하다. 그런데다가 파워에 굶주렸다고 할까. 그런 모양새다.

이 새로운 악의 세력은 그러면 구체적으로 얼마나 강한가.

중-러-이란-북한을 기본 축으로 하마스,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등 회교 근본주의 무장 집단, 거기에다가 쿠바,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등이 그 추종 국가들이다.

이 세력의 경제력은 미국, EU(유럽연합), 일본, 한국, 호주 등 서방동맹에 비하면 상당히 쳐진다. 모두 합쳐 전 세계 GDP의 20%를 넘지 못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나름 서방과의 대결에서 한 가지 강점이 있다. 그 하나, 하나가 전체주의 독재체제로 별다른 국내적 반발 없이 국가 자원을 군비에 쏟아 부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체제들은 경제력에 비해 군사력이 훨씬 강한 편이다. 엉망인 경제에도 불구, 러시아는 여전히 세계 2위의 군사 대국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 육군과 해군을 보유하고 있다. 이란은 러시아에 드론을 공급해주고 있고 북한은 러시아에 포탄과 미사일 등을 제공해주고 있다.


그런데다가 이 네 개 추축국 중 이미 3개국이 핵 보유국이고 이란도 머지않아 그 대열에 끼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중국과 러시아는 사실상의 군사동맹으로 헬기에서 재래식 공격용 잠수함, 미사일, 조기경보시스템 등을 공동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틀 안에서 러시아와 이란, 또 북한 관계도 준 군사동맹관계로 발전해가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가자전쟁을 통해 새삼 드러난 것은 반이스라엘 선전선동 정보전에 러시아, 중국, 이란, 하마스, 예멘의 후티 반군 등이 공동전선을 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새로운 ‘악의 축’은 각자 목표달성을 위해 맺은 이례적 동맹(unholy alliance)라는 게 한 가지 특징이다. 북한은 무늬만 공산주의이지 김일성 영생교 체제다. 중국은 레닌주의 체제다. 러시아는 한 때 공산국가였으나 푸틴은 기독교인임을 자처하고 있고 우크라이나 침공은 러시아 정교회의 블레싱 하에 이루어졌다. 이란은 회교시아파 신정체제 국가다.

이처럼 문화, 이데올로기, 비전, 어느 부문에서도 공유하는 것이 없다. 그런데 사살상의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이들을 하나로 묶고 있나. 제국주의적 성향이랄까, 확장주의 모드랄까 하는 것이 그 공통분모로 각자 이른바 ‘영향권(Sphere of influence)’확대를 추구하고 있다. 한 마디로 이 목표달성을 위해 공동전선을 구축하고 있다는 게 포린 어페어스의 지적이다.

푸틴 러시아는 소련제국 부활을 목표로 우크라이나 병탄도 모자라 동유럽을 넘보고 있다. 중국은 대만은 물론 남중국해 거의 대부분 해역을 ‘중차대한 이해’가 걸린 지역으로 일방적으로 선포, 이를 지키기 위한 전쟁불사를 외치고 있다. 이란은 하마스, 헤즈볼라 등을 사주해가면서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 예맨 등지로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다. 김정은은 급변한 군사지정학, 그 분위기에 들떠 잇단 미사일 도발에 핵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체제의 성격이 서로 다르다. 사실 그리 친밀한 관계도 아니다. 그런데 한 가지에는 동의한다. 기존 국제질서를 사방에서 공격해 파괴하는 거다. 그 게 이 유라시아 독재세력의 합의사항이다.’ 새로운 악의 세력의 준동과 관련해 존스 홉킨스 대학의 할 브랜즈가 던진 경고다.

그러니까 이 악의 세력들은 세계질서를 재편하려는 목적 하에 하나의 거대하고 끈끈한 망을 구축, 여러 전선에서 동시도발을 해오고 있다는 거다.

뉴욕타임스도 비슷한 진단을 하고 있다. 이 신문은 ‘악의 축’ 세력의 연합전선구축은 새로운 냉전체제 돌입 너머 세계적 규모의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길한 예측과 함께 문제는 대다수 미국인들이 그 사실을 깨닫지 있지 못하고 있다는 일침을 가했다.

“北, 한국인 테러 대상 물색…5개 해외공관 경계경보” 서울 발로 전해진 뉴스…. 어딘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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