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길이 기억된다. 그럴 정도로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유명한 선거 구호는 무엇일까. “못살겠다 갈아보자”가 아닐까. 1956년 제 3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이 내세운 구호로 오늘날에도 회자되고 있다.
“It’s the economy, stupid(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민주당의 클린턴 진영이 내 건 유명한 구호다. 그 저작권자는 제임스 카빌으로 민심은 민생과 직결되고 그 민생 이슈는 바로 선거판의 상수라는 사실을 함축적으로 강렬히 전하고 있다.
그 한 마디 구호에 걸프전 승리로 한 때 90%를 웃도는 지지율을 기록했던 조지 H. W. 부시가 그만 넉아웃되고 말았다.
실업률은 사상 최저수준이다. 경제는 분기당 3% 이상 성장하고 있다. 증시는 계속 호황을 구 가 하고 있고 오르기만 하던 금리도 마침내 내릴 기미를 보이고 있다. 전 세계 톱 10 기업 중 8개가 미국에 본부를 두고 있다. 대선의 해인 2024년 3월 현재 미국의 경제 성적표다.
“It’s the economy, stupid”- 이게 통한다면 현직인 바이든의 재선은 ‘따 논 당상’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바이든이 트럼프에게 계속 밀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은 네바다, 조지아, 미시건, 애리조나,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등 6개 경합 주 중 위스콘신을 제외한 5개 주에서 열세로 드러났다. 2월의 NBC뉴스 조사에서는 지지율이 37%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판의 바람도 심상치 않다. 바이든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은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노인성 치매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 같다.’ 80대 고령에 진입한 바이든에게 따라 다니는 말이다. 멕시코와의 국경지역은 불법입국자들로 넘쳐나고 있다. 현재의 경제적 호황을 바이든 행정부의 치적으로 보는 유권자들은 38%에 불과하다. 65%의 미국인들은 트럼프 시절 호경기를 기억하고 있다. 이런저런 것들이 바이든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선거판의 종속변수에 불과했다. 그 해외정책 이슈가 2024년 대선의 주요 변수로 작용하면서 이 역시 바이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싱크 탱크 채트햄 하우스의 지적이다.
AP/NORC의 최근조사에 따르면 해외정책을 국정의 가장 중요한 5대 이슈의 하나로 꼽은 유권자는 38%로 전년의 18%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유는 자명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 째 이어지고 있다. 뒤이은 것이 하마스의 이스라엘 테러공격에 따른 가자 전쟁이다. 그 전쟁의 불길은 전 중동지역으로 번질 기세다. 그리고 대만해협, 남중국해에서도 긴장은 계속 고조되고 있다.
‘다발성 위기가 뉴 노멀’이 됐다고 할까. 이와 동시에 그 정체가 점차 선명해지고 있는 것은 러시아, 중국, 이란, 북한과 하마스, 헤즈볼라 등 테러집단이 연계된 거대 ‘악의 축’이다.
이 같은 정황에서 치러지는 게 올 대선이기 때문이다.
천하대란으로 빠져들고 있는 국제정세. 이 상황에서 미국의 표심에 은연 중 만연되고 있는 것은 불안감과 피로증세다.
‘이러다가 혹시 3차 대전이…’하는 불안감은 ‘강력한 지도자 대망론’으로 이어진다. 바이든과 트럼프. 둘 중 누가 더 강력한 지도자로 보일까. 기억력 상실증에 걸린 것 같고 걸핏하면 쓰러지는 바이든은 이 이미지 경쟁에서 불리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하나같은 지적이다.
유럽에서, 중동에서, 동아시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밀려들고 있는 흉흉한 파도. 이에 대한 바이든의 접근방식 또한 많은 유권자들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하고 있다.
퀴니피악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적으로 60%의 유권자는 바이든의 해외정책에 미답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것으로 드러났다. 이스라엘-하마스전쟁에 대한 바이든의 대응방안에는 62%가, 멕시코국경문제 처리에는 63%가 불만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AP/NORC조사는 바이든의 중국과의 관계 처리방식에 38%만이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왜 이토록 부정적 반응 일색일까. ‘바이든 집권 4년 동안 유권자들이 목도해온 것은 위기의 계속적 발생이다. 그리고 그 위기들은 더 확산될 기미다. 그런데 위험을 최소화할 구체적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의 월터 러셀 미드의 질타성 지적이다.
이와 반비례해 나토 탈퇴를 공언하는 등 자못 황당하기까지 한 트럼프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식 접근방법에 보다 많은 유권자들이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 가디언지의 분석이다.
어디서 비롯된 현상인가. 20년 끌어온 중동전쟁으로 전쟁이라면 염증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째 이어지면서 피로감이 누적되고 있다. 이게 유권자들의 밑바닥 정서로 그 피로감의 반영 결과로 보여 지고 있다.
여기서 하나의 아이러니가 발견된다. 반세기 동안 워싱턴 인사이더로 해외정책을 다루어왔다. 때문에 본인 스스로도 ‘해외정책 대통령’으로 기억되기를 원한다. 그런데 해외정책이란 변수가 그런 바이든의 대선 레이스에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어서다.
이는 다름이 아니지 않을까. ‘세계의 경찰, 전 세계의 필수불가결한 나라로서의 미국이라는 아이디어’에 미국의 유권자들은 점차 회의적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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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