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제국의 붕괴, 그 후에 오는 것은…

2024-03-11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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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은 좌절됐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동부 군사 요충지 아우디이우카를 탈환했다. 이 같은 전황과 맞물려 프랑스, 라트비아 등 일부 나토(NATO)국가들이 우크라이나 파병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러자 푸틴이 일갈하고 나섰다. 서방이 우크라이나 전에 더 깊이 개입할 경우 이는 핵전쟁으로 이어지고 서방문명은 파괴될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다.

푸틴의 그 자세가 그렇다. 러시아가 마치 ‘군사적 초강’이라도 되는 양 자못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할까.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2년의 시점이 지나 3년 차로 접어든 현재. 그러면 러시아의 전쟁손익 계산서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

총 보유 3,500대의 전차 중 2,200대를 잃었다. 그동안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된 병력은 모두 36만이다. 그런데 전상자 수는 31만5,000을 헤아린다. 상황이 다급해지자 교도소를 습격하다 시피 해 죄수들을 징집해 전선에 투입해왔다.

침공 2년이 지난 현재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져들었다. 이 상황에서도 하루 전비만 최소 3억 달러가 소요된다. 거기에다가 6개월마다 5만 명의 전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국과 나토회원국들의 GDP(국내총생산)합계는 러시아의 40배가 넘는다. 전쟁은 장기화되면서 대대적 소모전 양상으로 변모하고 있다.

러시아는 과연 견뎌낼 수 있을까. 관련해 던져지는 질문이다. ‘러시아는 결국 피로 얼룩진 수렁에 깊이깊이 빠져들고 말 것이다.’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리온 아론의 지적이다.

푸틴의 핵전쟁 발언은 이런 사정을 호도, 유리한 조건에서 휴전을 끌어내기 위한 위협이고 또 다른 돌파수단으로 푸틴은 러시아계 인구가 많은 에스토니아나 라트비아 등 동유럽 일부국가를 가까운 장래에 기습. 유럽에서 제 2의 전선을 열 수도 있는 것으로 그는 내다보았다.

‘나토를 약화, 분열시키고 미국을 유럽에서 몰아낸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전략적 목표다. 그 목표는 달성했나. 침공 2년이 지난 현재 푸틴은 정반대 상황에 직면해 있다.


2024년 3월 7일 스웨덴의 가입이 완료됨으로써 나토 회원국은 32개국이 됐다. 나토는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단합돼 있고 또 강력해진 것이다.

스웨덴의 가입은 단순히 회원국이 하나 더 늘었다는 의미만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발트해는 ‘나토의 호수’가 됐다. 서방의 발트 해 봉쇄가 언제라도 가능해진 것이다.

200여 년 동안 중립국가로 지내오면서 스웨덴은 세계적 방산강국으로 성장해왔다. 그 스웨덴의 가입은 나토의 군사력 강화와 직결되고 있다.

‘이야기는 이로 끝나는 게 아니다.’- 미 의회 전문지 더 힐의 지적이다. 튀르키예, 헝가리 등의 반대로 신청 2년 만에 이루어진 스웨덴의 나토가입 종료, 이와 때를 같이해 ‘러시아 판 나토’로 불리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에서 일고 있는 전력이탈 상황에 더 힐은 특히 주목을 한 것.

CSTO는 2002년 10월 7일에 창설된 구소련에 속했던 6개 공화국의 집단안전보장 조직이다. 아르메니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러시아, 타지키스탄 등이 그 원년 멤버다. 우즈베키스탄은 2006년 가입했다가 6년 후 탈퇴했다.

원년 멤버인 아르메니아가 우즈베키스탄에 이어 CSTO 탈퇴 의사를 밝혔다. 그러니까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겠다는 거다. 그런데 그 타이밍이 절묘하다. 헝거리 국회의장이 스웨덴 나토가입 비준안에 서명한지 이틀 후인 지난 4일에 탈퇴의사를 밝힌 것.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두고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해묵은 갈등이 재현됐다. 아제르바이잔이 반테러작전이라는 명분하에 나고르노-카라바흐에 대한 공습을 감행, 점령했다. 그러자 이 지역에 거주하던 아르메니아계 주민 10만 여명이 피신했다. 이게 지난해 9월의 일이다.

이 상황에서 러시아는 수수방관만 하고 있었다. 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력고갈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르메니아는 러시아의 무능함을 비난하면서 탈퇴 의사를 밝히게 된 것이다.

러시아의 영향권인 코카서스 지역에서 일어난 이 일련의 사태. 무엇을 말하나.

‘제국들(empires)은 고대부터 혼란에 해결책을 제시해왔다. 그러나 제국들이 붕괴하면 그 자리에 남는 건 더 심한 혼란이다.’ 포린 폴리시 리서치 인스티튜트의 로버트 카플란의 지적이다.

제국의 중심부가 흔들린다. 제국을 지탱하는 구심력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그 파장이 주변부로 전해지면서 혼란으로 이어진다. 제국의 위용에 눌려 있던 주변부의 소수민족 집단 간의 갈등이 확산되기 시작, 결국 내전으로 번지면서 제국은 주저앉고 마는 것이다.

코카서스 지역뿐이 아니다. 또 다른 러시아 영향권인 발칸 반도에서도 소용돌이가 일고 있다. 2년 이상을 끌어온 우크라이나 전쟁, 그 전선에서 수십만에 이르는 러시아 장병들이 죽어나가면서 동시에 일고 있는 현상으로 이는 러시아제국 붕괴의 서곡으로 보인다는 게 카플란의 진단이다.

내셔널 인터레스트지도 같은 지적을 하고 있다. 1인 독재라는 깨지기 쉬운 체제. 깊은 내상으로 신음하고 있는 군. 날로 악화되고 있는 경제.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러시아의 엘리트 계층. 이는 언제라도 푸틴 체제, 더 나가 러시아제국 붕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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