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핵무장 춘추전국시대’가 온다고…

2024-03-18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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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파리를 지키고자 기꺼이 뉴욕을 포기할 수 있는가‘-. 1961년, 그러니까 동서냉전이 절정에 다다랐던 때 프랑스의 드골이 케네디에게 던진 질문으로 유명하다.

미국은 철석같은 안보 공약을 다짐하고 있었다. 소련과의 핵전쟁 발발 시 미국은 핵우산을 통해 프랑스를 지켜준다는 거다. 그 핵우산의 신뢰성에 드골은 의구심을 제기했던 것이다.

반세기도 훨씬 전 드골이 던졌던 그 질문이 최근 들어 다시 소환되고 있다. ‘미국은 베를린을 지키고자 시카고를 포기할 수 있을까’ 등의 버전으로.


두 주 전이었나.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에 병력을 파견하는 아이디어를 띄었던 것이. 그러자 푸틴은 대뜸 핵전쟁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서구의 문명이 파괴될 수도 있다는 으름장을 놓으면서.

이와 함께 새삼 악몽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핵 공격(혹은 최소한 핵무장을 방패로 삼은 재래식 전면침공)이 현실적으로 가능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확산되고 있는 것은 미국의 핵우산 공약이 과연 전쟁 억지력이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다.

어디에서 비롯된 현상인가.

3년차를 맞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황은 어느 쪽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나. 우크라이나 동부의 요충 아우디이우카가 함락되면서 러시아 쪽에 유리하게 기울고 있다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무엇이 이런 상황을 불러왔나. 서방세계에 만연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피로증세다. 가자전쟁으로 미국의 전력은 분산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대체적인 여론은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MAGA 공화당원 등 일부 극우세력의 볼모로 잡힌 미 의회는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고 있다.

지도력을 상실한 채 갈팡질팡하고 있는 백악관과 의회. 이는 과거의 악몽을 떠올리고 있다. 시리아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곤경에 처한 우군을 내버려두고 미국은 어느 날 홀연히 떠나버렸다. 그러니 우크라이나도 혹시 같은 운명을….

그 같은 불안감이 뭉실뭉실 펴오르면서 미국의 안보 공약, 더 구체적으로 핵 우산정책에 대한 의구심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불안감 가중요소는 ‘트럼프의 재등판’가능성이다. 이는 쇼크로 유럽과 아시아의 동맹국들에게 받아들여지면서 ‘핵 주권’의 목소리가 커가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무너질 때 러시아침공의 바로 그 다음 타깃이 될 수 있다.’ 폴란드가 내보이고 있는 다급한 입장이다. 그 대비책으로 대대적 국방비 증액과 함께 바르샤바는 전술핵무기의 폴란드 배치 요구를 하고 나섰다.

바이든 행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이런 폴란드의 요구를 트럼프 진영과 가까운 관계인 헤리티지 연구소는 긍정적으로 검토, 주목되고 있다.) 그러자 뒤이어 나오고 있는 것은 폴란드 자체의 핵무장론이다.

‘자체 핵무장을 통해 스스로의 안보를 지켜야 한다.’ 폴란드에서만이 아니다. 2차 대전 패전국으로 오직 평화만 지향해왔던 독일에서도 같은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안보문제는 ‘발 등의 불’이 됐다. 거기에다가 미군의 나토에서의 탈퇴를 공공연히 주장했던 트럼프의 백악관 재입성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자 높아가고 있는 것이 ‘유로뉴크(Euronuke- 유럽의 독립적 핵 방어체계 구축론)’제창의 목소리다.

‘유로뉴크’의 원 저작권자는 프랑스다. 앞서 인용한 질문과 함께 드골은 핵 주권정책에 따라 자체의 핵 억지력을 키워왔다. 프랑스의 이 ‘유로뉴크’노선에 폴란드 등 동부 최전선에 있는 국가들은 물론, 독일 등 나토의 중심 국가들도 동조하는 분위기로 유럽의 기상도는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유럽을 휩쓸고 있는 안보불안증세는 유라시아대륙의 반대편 동아시아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이와 함께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 한국과 일본 등지에서도 ‘자체 핵무장’이 잠복성의 주요 어젠다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이코노미스트지의 보도다.

‘우크라이나의 안보는 대만, 더 나가 동아시아의 안보와 직결된다.’ 동아시아 민주국가들의 공통적 시각이다.

그런 우크라이나가 패배할 경우 동아시아에 미치는 파장은 엄청나다는 것이 이 잡지의 지적이다. ‘깐부’ 푸틴의 승리로 한껏 고무된 시진핑은 대만침공에 나설 수도 있다. 이런 판단과 함께 대만, 한국, 일본 세 나라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

이 동아시아의 민주국가들 역시 트럼프의 재등판을 불안한 시각으로 응시하고 있다. 이런 정황에서 트럼프 재집권과 관련해 예상되는 가장 극단적 시나리오는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에 대한 안보공약 폐기가 될 것으로 이코노미스트지는 내다보았다.

이는 그러면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최악의 악몽 시나리오는 아시아의 동맹국들이 미국의 안보질서에서 이탈해 중국의 영향권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와 정반대편의 시나리오는 한국과 일본이 핵 주권노선으로 선회, 자체 핵무장 국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내려지는 결론은 무엇일까. 오바마가 핵 없는 세상을 주창한 게 2009년 프라하연설에서였던가. 그 꿈은 결국 꿈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 전쟁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로, 머지않아 국제사회는 ‘핵무장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할 수도 있다는 것이 아닐까.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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