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bias and the Angel, c. 1470, tempera on panel
베로키오와 다빈치
베로키오의 경력에 대해 미술사학자들은 다양한 비평을 해왔다. 이는 그의 폭 넓은 작품 활동과 재능에 관한 것이다. 그는 조각, 장식, 기능적인 것까지 모든 작업을 했다. 주목할 점은 베로키오의 제자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엄청난 명성으로 인해 베로키오는 그늘에 가려져 왔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베로키오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함께 현존했던 가장 위대한 미술가라는 칭호를 받는다. 그의 제자들은 탁월한 재능의 다빈치 외에도 페루지노, 산드로 보티첼리, 로렌조 디 크레디 등이 있고 그의 공방은 이른바 피렌체 예술가들의 산실이었다.
베로키오는 일생동안 조각과 금세공 분야에 힘을 기울였다. 회화활동은 제자인 다빈치가 워낙 탁월하여 1470-1480년 동안에만 했다. 그의 회화에서는 과학적 탐구를 지향한 15세기 후반 피렌체파의 대표적 자연주의자의 면모를 볼 수 있다. 그 예로 다빈치와 함께 그린 <그리스도의 세례>가 유명하지만 이번에는 전시되지 못했다.

Madonna and Child, c. 1465_1470, tempera and oil on panel
베로키오와 메디치
1466년 스승 도나텔로의 죽음 이후 그의 제자였던 베로키오는 도나텔로의 후임으로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게 되었다. 그는 메디치가로부터 생생한 동식물 문양을 새긴 대리석 묘비, 제단화, 공식 연회를 위한 다양한 미술품 제작을 의뢰 받았다.
당시 피렌체 예술가들은 부호 메디치로부터 후대를 받고 많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피렌체 도시 전체의 예술품이 메디치가의 후원으로 제작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의 하나인 메디치가 별장을 위한 청동분수 <돌고래를 안은 어린소년>은 안정감 있는 자세와 발랄한 표현으로 베로키오의 조각 중 걸작으로 꼽는다.
오늘날에도 재능 있는 작가들을 후원하는 일은 흔한 일이 되었지만 과연 그 시대 메디치 가문의 전폭적인 지원과 견줄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싶다.
이탈리아가 조상으로부터 받은 가장 큰 유산은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가를 아끼는 풍토다. 당연히 그 풍토에서 나온 유물들이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관광대국 이탈리아의 주 수입원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가 일천한 미국으로서는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Madonna and Child with Two Angels, c. 1470_1474, tempera on panel
베로키오의 업적
베로키오는 고대의 미술에서 영감을 받았고 자연에 대한 연구도 소홀하지 않았다. 그는 지성과 독창적인 사고로 관습에 도전하며 다양한 작품 활동을 했다. 심리적 깊이와 미묘함의 표현이 그의 작품에 놀라우리만치 사실적으로 입혀졌다.
그는 주로 청동조각을 통해서 인정을 받았다. 그가 제작한 오르산 미켈레 교회에 있는 청동 군상 <예수와 성 토마스>와 피렌체의 산 로렌초 교회에 안치된 메디치의 대리석 묘비 역시 걸작품이다.
1481년에 베네치아 정부와 계약한 마지막 작품 <콜레오니 장군 기마상>은 그의 엄격한 사실주의가 유감없이 발휘되어 스승 도나텔로의 작품 <가타멜라타 기마상>에 필적하는 기념비라 말한다. 베로키오 일생 최고의 순간은 피렌체 대성당 첨탑을 장식한 금도금된 거대한 구리 원형의 제작이었다. 1471년에 완성하면서 그로 인해 매우 기교적이고 창의적인 미술가로서의 명성을 확보했다. 그는 장엄한 조각과 그림에서 금세공, 건축 및 엔지니어링 분야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미디어 전반에 걸쳐 예술을 창조했다.
doh0504@gmail.com
도정숙 화가
뉴욕, 서울, 워싱턴, 파리에서 30여회의 개인전을 가짐. 세계 각지에서 국제 아트 페어와 200여 회의 그룹전 참가. 매거진 ART MINE에 미술 칼럼 기고 중. 저서로 <그리고, 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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