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차이코프스키 사계(四季) - 1월‘화롯가에서’

2019-01-29 (화) 07:26:16 이봉희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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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봉희의‘클래식 톡톡(Classic Talk Talk)’

1875년 11월 24일, 차이코프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는 출판업자 니콜라이 버나드(Nikolay Bernard)의 제안을 받아들여 <사계 The Seasons> 연작을 쓰겠다는 편지를 보낸다. 차이코프스키가 그리고자 했던 자연의 사계절은 어땠을지 궁금해진다. 러시아의 1년을 그린 그의 <사계>는 마치 19세기 러시아에서 보내는 음악편지 같다. <사계>는 1876년 상트 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에서 발행되는 음악잡지 <누벨리스트 Nouvellist>에 게재되었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대부분 격정적인 면이 강하다. 그러나 그의 피아노 곡들은 연필로 그려진 그림처럼 담백하다는 면에서 매력적이다. 이 때문에 차이코프스키의 ‘12개의 성격적 소품’이란 부제의 <사계>는 그의 음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작품번호 Op.37인 이 작품은 피아노 독주 소품이지만 오케스트라 편성으로도 편곡되어 연주되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계’하면 우리는 보통 이탈리아의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를 먼저 떠올린다.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구성된 것과 달리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소품곡 <사계>는 1월부터 12월까지 각각의 달로 구성돼있다. 비발디가 그린 <사계>가 ‘바로크적 풍경화’라면, 차이코프스키의 <사계>는 ‘낭만적 풍경화’라고도 비유할 수 있겠다.


차이코프스키의 <사계>는 음악과 시를 결합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또한 각 곡들에는 그 달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소제목이 달렸다. 사회주의 혁명 이전의 러시아는 구력(舊曆)을 사용했기 때문에 현재의 달력과 약 12일정도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 그의 1년 계절 변화가 오늘날의 계절 감각과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긴 하다.

러시아의 겨울밤은 길고도 길다. 차이코프스키의 1월 ‘화롯가에서’는 러시아 겨울의 낭만적인 풍경을 그렸다. 그는 러시아인이 가장 사랑하는 문학가 중 한명인 알렉산드르 푸쉬킨(Aleksandr Pushkin, 1799~1837)의 시에서 영감을 얻었다. 차가운 겨울바람과 매섭게 흩날리는 눈발들, 그리고 붉게 타는 화로의 불꽃을 음악으로 묘사했다. 또한 벽난로 옆에 온 가족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따뜻하고 나른한 겨울밤의 느낌을 담았다. 다음은 차이코프스키가 악보의 서두에 인용한 푸쉬킨의 시 ‘At the Fireside’이다.

한 귀퉁이에 밝힌 평화로운 행복이여
밤은 석양의 옷을 걸쳐 입었네
벽난로의 작은 불씨는 점점 사그러들고
초마저 심지가 다 타버렸네

A little corner of peaceful bliss,
the night dressed in twilight;
the little fire is dying in the fireplace,
and the candle has burned out.

새해에는 1월 ‘화롯가에서’를 시작으로 차이코프스키의 <사계> 12곡을 다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간결한 구성의 5분 남짓 되는 짤막한 소품곡들인 만큼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따뜻한 1월 소품곡 ‘화롯가에서’와 함께 러시아의 2월 풍경이 더욱 기대되는 오늘이다.

<이봉희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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