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코,1988’(Nico,1988) ★★★★
니코(트린 디르홀름)가 통곡하며 고통을 호소하듯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활동한 미국의 록그룹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리드 싱어로 독일 태생의 미녀 가수이자 모델이며 배우(페데리코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 출연)였던 니코(본명 크리스타 페프겐)의 삶의 마지막 3년을 극적으로 강렬하고 또 꾸밈없이 거칠도록 사실적으로 그린 준수한 이탈리아와 영국의 합작품이다.
니코는 재능 있는 미인으로 한때 앤디 와홀의 ‘팩토리’의 간판 가수였고 프랑스의 미남 배우 알랭 들롱과의 사이에 아들 아리를 두었으나 들롱은 자기가 아버지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니코는 인기가 시들면서 헤로인을 비롯한 약물중독자가 되어 1988년에 49세로 요절했다.
이 영화는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결별한 니코가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밴드와 함께 자신의 최근 앨범을 선전하기 위해 영국의 맨체스터와 이탈리아 그리고 체코의 프라하 등지에서 공연한 내용을 그렸다. 헤로인이 없으면 못 사는 니코가 삶의 내리막길로 추락하는 과정이 덴마크 배우이자 가수인 트린 디르홀름의 치열하고 방기하는 듯한 압도적인 연기에 의해 감동적으로 그려졌다.
1986년부터 1988년까지 니코가 영국인 매니저 리처드(존 고던 싱클레어)와 밴드와 함께 순회 공연을 하는 모습과 약물에 중독된 니코의 자포자기적인 삶을 중점적으로 그리면서 니코의 과거를 플래시백으로 보여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 회상에서 니코와 다른 유명 가수들인 짐 모리슨, 밥 딜란, 믹 재거, 루 리드 및 레너드 코엔 등과의 교류가 얘기된다.
과거의 아름다움을 잃은 니코는 헤로인이 없으면 노래를 못 부를 정도로 중증 약물 중독자로 일단 마이크를 붙잡으면 굵은 저음으로 통곡하고 고통에 울부짖는 듯이 노래하는데 매니저와 밴드멤버 등 대인 관계는 엉망이다. 아무렇게나 자른 머리를 검게 염색하고 가죽 재킷에 검은 부츠를 신고 마치 관중을 향해 선전포고라도 하는 듯이 노래 부르는 모습을 디르홀름이 에너지와 카리스마가 가득하게 연기하는데 완전히 그의 원-우먼 쇼다.
마지막에 니코가 정신병동에 있는 아리를 오래간만에 찾아가 재회하는 장면이 비감하다. 니코는 너무 젊었을 때 아리를 낳아 아들을 제대로 키울 수가 없어 법원에 의해 양육권이 박탈돼 아리는 프랑스인 할머니가 키웠으나 탈선에 이어 정신병을 앓게 된다.
화면을 가득히 메우는 디르홀름의 고통과 열정이 뒤엉킨 도발적이며 퉁명스럽고 또 때로는 우습기까지 하면서도 자기를 내던지는 듯한 연기가 보는 사람을 화면 안으로 끌어당긴다. 다양하기 짝이 없는 겁나는 연기다. 수잔나 니키아렐리 감독(각본 겸). 뉴아트(11272 샌타모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