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꽃 (Comfort Woman)
2018-06-12 (화) 08:14:16
고현혜
사람들이 나를 위안부라고 부른다.
내게도 이름이 있었다.
1. 1991년 서울
TV 소리는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늘 곁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주눈 것처럼—
그날은 일본말이 귀에 들어왔다.
우리가 그런적이 없다.
그 여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자진해서 우리에게 왔다.
우리가 강요한 적이 절대로 없다.
나는 눌은 밥 뜨던 숟가락을 떨어트렸다.
화면에는
트럭 뒷좌석에
앉아 있는 젊은 처녀들이 보인다.
그 가을
논두렁 옆에서
나와 순자가 탔던 것 같던
2. 1939년 진주
우리 샌닌바리* 공장으로 가는 거
맞지—
우리 꼭
다시 고향에 오자.
작은 우리의 손 꼭 잡았다.
늦여름 함께
봉 숭 아
물들인 붉 은 손 톱
아,
주홍빛 감 익어가는
초가지붕이 점점 멀어져간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고향의 마지막 언덕길을
넘어갈 때
순자는 하아얀
고무신을 벗어 트럭
밖으로 떨어트렸다.
*샌닌버리: 태평양전쟁 때, 참전한 사람의 무운장구를 빌기 위하여,
1미터 정도 길이의 흰 천에 붉은 실오 천 명이 한 땀씩 꿰매어 만든
일종의 부적.
3. 1941년 낯선 곳에서
그날 밤
긴 칼을 뺀 순사들이
솔잎을 따던 나를 끌고 간다.
소쿠리 속의 초록 가시들
하얀 피 냄새 풍기며
흔들리는 갈대밭 속으로 떨어진다.
뒷마루에 앉아서 송편 빚으시던 할며니
어머니께 물 끓이라 재촉하시며
솔잎 따올 나를 눈 빠지게 가다리실 텐데…..
얼굴에 뿌려지는 생선 비린내
꿈속에선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4. 1943년 중국 상해
어느 날 밤
순사는 우리들을 모아놓고 물었다.
“누가 백명을 상대할 수 있지?”*
나는 손을 들었는데
순자는 들지 않았다.
그날 밤 그들은 끊는 물에
순자를 …..
그리고
우리를 먹였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순자는 내 안에 살고 있나?
*위안부 증언
5. 1946년 다시 진주로
해방이 된 지
1년 후
나는 집으로 왔다.
짧은 머리
한복이 아닌 이상한 옷
더듬거리는 말투
어머니는 조용히 뒷방으로
나를 감추셨다.
어둠이 내리자,
어머니는 나를 우물가에 데려가서 씻기셨다.
뜨거운 강철로 지져져
오래된 나무의 뿌리처럼,
다 타버린 나무의 껍질처럼 변해버린
나의 몸이—초승달빛 아래 비쳐진다.
늘 웃으시며
오, 아가, 너의 살결이 백옥 같구나, 눈부셔.
라고 하시며 씻기시던 어머니
어머니는 미역국을 끓여 하얀 쌀밥위에
내가 좋아하는 하얀 생선살을 올려놓으셨다.
어머니, 살은 먹을 수가 없어요.
그날 밤, 어머니는 광에서
목을 매다셨다.
내 방에 작은 혼수 보따리와
주먹밥을 남기시고—
아버지는 그것을 내게 던지시며
문 쪽으로 손을 휘 내저으셨다.
그 새벽에 나는 떠났다.
6. 그 이후
30년
40년
영원히
침묵
침묵
침묵
내 무덤까지 가져가리
7. 1991년 새벽 3시
그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찢어진 창호지 틈새로 보이던 수많은 푸른 별들이
하얀 나비가 되어 내 방으로 날아 들어온다.
한 마리,
백 마리.
천 마리
수많은 하얀 나비들이 거미줄 쳐진 내 입을 열어
내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내 몸속으로 들어가 아물지 못한 빨간 상처를 한 뜸 한 뜸
꿰맨다.
나바들이 주검보다 무거운 내 몸을 일으킨다
나비들이 지옥보다 무거운 내 문의 빗장을 열어
이 새벽에
나를 깨운다.
<
고현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