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박근혜와 최순실

2017-05-24 (수) 12:00:00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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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갑을 찬 채 호송차에서 내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초췌한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다. 얼굴까지 약간 부어 안쓰럽기까지 하다. 정치란 무엇인가, 권력이란 무엇인가를 일깨워주는 생생한 현장 교과서다. ‘한국의 잔 다르크’라고까지 불리던 박근혜가 어떻게 하다 이 모양이 되었을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린 바로 그날이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행사 추도사에서 “노무현 대통령님도 오늘만큼은 여기 어디에선가 우리들 가운데 숨어서 모든 분들께 고마워하면서 ‘야, 기분 좋다’고 하실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는데 이건 통합정치를 외치는 대통령의 추도사치고는 좀 실수인 것 같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왜 이렇게 비참하게 되었을까. 직접적인 원인은 최순실 때문이다. 최순실 사건이 없었으면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 될 수 있었을까. 만약 당선되었더라도 엄청난 고전을 겪었을 것이다. “문재인이 세월호 희생자에게 고마워 할 것이 아니라 최순실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조크하는 사람들도 있다.


진짜 원인은 박근혜 주변에 제대로 된 참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건 안된다”고 말할 수 있는 참모가 한두명만 있었어도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막을수 있었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옆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던 청와대 요리연구가 김막업 여사의 얼마 전 인터뷰가 이를 웅변한다. 박근혜는 최순실외 사람 만나기를 싫어했고 차갑고 정이 없는 스타일이라고 그의 일상생활을 묘사했다.

대통령의 권력의 토대는 국민의 믿음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국민들과의 담을 허물고 파격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도 그의 권력이 국민의 믿음 위에 서지 않으면 자신의 개혁정책이 성공할 수 없다는 교훈을 박근혜로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대통령 취임 초부터 줄기차게 국민들의 의식개혁을 주장해 왔으나 막상 그 자신은 전혀 의식개혁의 시범을 보이지 못했다. 최순실만 가까이 하니 최순실이 저절로 비선실세로 떠오른 것이다. 박근혜가 스스로 불행의 불씨를 키운 것이다. 최순실도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후 자신이 떠났어야 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하고 있다.

자, 이제 박근혜와 최순실의 우정에 묘한 함수관계가 성립 되었다. 박근혜가 뇌물혐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최순실이 나를 속이고 저지른 죄이며 나는 전혀 몰랐다”고 우겨야 한다. 18개 혐의 중 뇌물혐의만 벗어나면 박근혜의 형량은 가볍게 떨어질 수도 있다.

반면 최순실은 “나는 박 대통령이 하라는대로 했을 뿐이다”라고 주장해야 형량을 줄일수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최순실은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다. 더구나 박근혜는 전직 대통령이기 때문에 아무리 중형을 받아도 언젠가는 사면을 받게 되어있지만 자신은 사면받을 가능성이 없다. 의리에 금이 가더라도 최순실은 박근혜에게 책임을 떠넘겨야만 5년 정도 형으로 끝낼 수가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의 40년 우정이 이번 재판에서 시험대에 올라있다. 그런데 며칠 전 검찰심문에서 박근혜는 “최순실이 왜 나를 이렇게 속였는지 모르겠다. 나 자신이 너무 참담하다”고 자책한 것으로 오늘 아침 신문에 보도되고 있다. 최순실에게 다 떠넘기기로 결심한 것 같다. 나는 억울하다고 외치는 박근혜의 행동은 평범한 소시민 같고 대통령 지낸 사람 같지가 않다. 최순실이 앞으로 진행될 재판에서 어떤 태도로 나올지 관심꺼리다. 이번 재판은 의리를 항상 강조해온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인간성 시험장이기도 하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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