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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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친일파지?

2019-07-17 (수)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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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경험담이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을 비난하는 칼럼을 썼더니 댓글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당신 친일파지?”

나는 좀 어리둥절했다. 우리세대는 식민통치를 받아본 세대도 아니거니와 나는 일본말을 모른다. 일본에 유학한 적도 없다. 우리 부모는 일본 식민통치 시대에 살았지만 일본관청에서 벼슬을 한 적이 없고 평범한 시민이었을 뿐이다. 더구나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내가 쓴 칼럼의 내용이 일본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으며 일본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독자는 나를 왜 친일파라고 했을까.

의문은 서울에서 풀렸다. 얼마 전 서울여행에서 친구들을 만나 내가 겪은 이야기를 하며 이해가 안 된다고 했더니 대학교수인 친구가 요즘은 ‘빨갱이’ 대신 ‘친일파’라는 말이 유행이라고 했다. 학교에서도 논문이나 강의내용이 친일파로 낙인찍히면 연구비 중단 등 여러 면에서 애로를 겪기 마련이고 심하면 쫓겨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친일파’와 ‘보수파’라는 말이 거의 동의어처럼 쓰이는 세상이 되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을 극도로 싫어하니 참모들이 문 대통령 앞에서는 ‘일본’이라는 말을 꺼내기도 꺼리고 고위공무원 중에서도 일본통으로 불리는 공무원은 별 볼일 없는 자리로 좌천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일본에 어떤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가는 어제 열린 청와대 회의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일본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이라는 등 초강경 발언 일색이다.

그런데 답답한 것은 아무리 훑어봐도 우리에게는 일본의 급소를 찌를 무기가 없다는 점이다. 일본상품 불매운동? 그건 중국이 이미 써먹은 무기다. 중국에서 일본상품 불매운동이 일어나 어찌 되었는가. 일본기업들이 중국에서 다 빠져나가 오히려 중국이 경제적 타격을 입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번 사태에서 우리가 놀란 것은 한국이 세계의 반도체 왕국으로 알았는데 일본이 뒤에서 원천기술을 목 죄니까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송두리째 흔들렸다는 어이없는 사실이다. 일본이 한국의 생산 산업에 위기를 가져다줄 수 있는 원료 내지 기술은 1,200개나 된다니 지금 겪고 있는 반도체 위기는 예고편에 불과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한일관계가 건국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현 정권이 일본외교에 어두우면 재야에 묻혀있는 일본 전문가들을 앞장세워 이 난국을 해결하고 볼 일이다. 문 대통령은 “이순신 장군” “남은 배 12척” 운운 할 일이 아니라 고집을 버리고 사태의 심각성을 인정해야 한다.

민족을 앞세운 평화정책에만 매달릴 시국이 아니다. 해리스 주한 미 대사는 “지금은 미국정부가 한·일 관계를 중재하거나 개입할 의사가 없다”고 한 발언에서 우리는 일본이 이번 사태에 대해 미국과 사전에 의논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된다. 미국을 대신해서 일본이 ‘문재인 손보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인상을 강하게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중(對中) 견제 요구를 비켜가는 문 정부에 대한 미국의 간접적인 경고다.

일본의 한 여론조사에서는 한국을 더욱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는 의견이 58%로 나타났다. 한국을 한번 혼내주어야 한다는 것이 아베를 지지하는 극우세력의 의견이 아니라 일본인 다수의 의견이라는데 한일관계의 심각성이 있다.

문 대통령이 친일을 적폐로 몰고 반일을 국민정서로 몰고 갈 때가 아니다. 문 대통령이 반일감정을 앞세워 국민을 끌고 가려는 생각이야말로 적폐청산의 대상이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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