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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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 재혼

2019-07-03 (수)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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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 재혼이 얼마나 어려운가와 노인이 나이 들어 사랑에 빠지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를 흥미 있게 그린 소설이 있다. 프랑스작가 라포샤디르가 쓴 ‘라 시엔’이라는 소설인데 미국에서는 에드워드 로빈슨 주연의 ‘Purple Street‘이라는 영화로 제작되어 히트를 친 적이 있다.

노인 크리스토퍼는 부인을 잃은 후 어떤 할머니와 재혼하게 되는데 잔소리가 심해 집에 들어가는 것이 지옥처럼 느껴지고 부인인 할머니는 세상을 떠난 전남편을 그리워하며 크리스토퍼와 재혼한 것을 후회한다.

아마추어 화가인 크리스토퍼는 어느 날 거리에서 젊은 여자를 사귀게 되는데 그때부터 그의 생활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고 자신이 다시 태어난 것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 그의 그림 색상이 밝아지고 활기에 가득 차 뉴욕화랑의 관심을 모으게 된다.


그런데 크리스토퍼는 자신의 이름을 감추고 새 그림들을 젊은 애인 이름(키티)으로 판매하게 된다. 드디어 그의 그림은 화단에서 가장 비싼 가격으로 팔리지만 화단에서는 애인인 키티가 그린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돈을 움켜쥔 키티는 크리스토퍼를 버리고 젊은 건달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크리스토퍼는 결국 홈리스피플 신세로 전락한다는 것이 소설의 줄거리다.

사랑은 젊은이에게는 눈을 멀게 하지만 노인에게는 눈을 뜨게 한다. 송혜교와 송중기의 이혼이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데 젊은이들이 사랑에 취해 눈이 먼 결과의 비극이다. 그러나 노인에게 있어 사랑은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하는 개안수술 효과를 가져 온다. 안보이던 것이 보이는 것이다. 괴테의 ’파우스트‘, 톨스토이의 ’부활‘, 피카소의 ’하녀들‘과 같은 대작은 모두 이 거장들이 70세가 넘어 여성들과 사랑에 빠졌을 때의 작품이다.

이 같은 현상은 예술가들에게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일반적으로 노년의 재혼은 남자는 ’외로워서‘, 여자는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해‘로 압축된다. 여자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혼자 살지 재혼하지 않는다. 배우자가 병이라도 생기면 평생 돌봐야 한다는 등의 각종 부담감이 여성을 심리적으로 억압한다.

누가 노년에 재혼하면서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라고 말한다면 약간 위선적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이이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 상대방의 장점보다 허물과 단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한두 번 만나 사랑하기란 힘든 일이다.

부부가 같은 날 죽을 수는 없는 문제다. 누군가는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어있다. 따라서 노년재혼은 남녀가 필요에 의해서 결합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100세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배우자가 세상을 떠나도 20-30년을 더 살아야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80세가 가까워 오면 지연이나 혈연, 학연과 사연(회사)등이 모두 끊어져 그야말로 로빈슨 크루소 신세가 된다. 인생을 함께 걸어갈 반려자가 필요하다.

내 삶의 주변에 누가 있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배우자가 원수같이 느껴진다면 그건 가정이 아니라 지옥이다. 백세 시대에는 누군가 마음을 나눌 상대가 필요하다. 인간은 서로 의지하고 소통하고 대화해야 살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서로 돌봐줄 사람도 필요하다.

노년 재혼은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홀로 선 둘이 만나는 것이다. 무엇보다 상대방 인격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철로 길처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란히 달리는 만남이라야 한다. 특히 남성이 재혼에서 가부장적으로 군림하려 들면 재혼은 파경에 이른다. 재혼은 노인들이 마지막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예술작품이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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