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느 무명골퍼가 남긴 교훈

2019-05-15 (수)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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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골퍼 강성훈의 승리는 “장하다”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 159번 도전해서 챔피언이 되었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승리다. ‘AT&T 바이런 넬슨‘ 대회는 메이저 토너먼트는 아니지만 PGA 토너먼트 중에서는 텍사스를 대표하는 대회라고 할 수 있다. 이날 대회에 골프광인 부시 전 대통령(아들)이 나와 해설의 일부를 맡은 것만 보아도 무게를 짐작할 수 있다.

강성훈은 무명의 프로골퍼였다. 사회자가 부시 전 대통령에게 “생 캉(Sang Kang)의 플레이를 어떻게 생각 하느냐”는 물음에 부시는 “잘 한다”고 하면서도 ‘강성훈’이라는 생소한 이름을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AT&T 바이런 넬슨 토너먼트는 텍사스 출신의 전설적인 골퍼 ‘바이런 넬슨’을 기념하여 열리는 자선대회로 댈러스와 포트워스의 미국부자들이 후원하기 때문에 풍부한 예산을 지니고 있다. 보통 1억5,000만 달러의 후원금이 들어오며 우승자 상금이 145만 달러나 되고 10등이 20만 5,000달러, 꼴찌인 83등에게도 1만 4,000달러의 상금이 배당되는 것을 보아도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강성훈은 이날 대회에서 매스터스 우승자인 조던 스피스, US오픈 챔피언인 브룩스 켑카를 제치고 우승했다. 하루만 더 경기가 계속 되었으면 켑카가 우승했을지도 모른다.

강성훈의 이날 우승은 유명골퍼들을 제치고 챔피언이 되었다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159번 도전해서 자신의 뜻을 이루었다는데 감동이 있다. 한국 프로골퍼 중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갖고 있는 골퍼는 박세리와 최경주다. 박세리는 새벽 2시까지 연습하는 끈기를 보였고 최경주는 전라남도 완도 농부의 아들로 아버지가 경운기에 태워 연습장에 바래다줄 정도로 가난 했었다. 박세리가 연장전에서 양말을 벗고 물속에서 샷을 치던 US오픈의 극적인 모습은 골프사에 길이 남는 명승부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박세리는 LPGA 데뷔 4번째 경기에서 US오픈 챔피언이 되었다. 삼성이 연간 3억원의 후원금을 내겠다고 나서는 등 화려한 질주를 계속하면서 LPGA 우승을 거머쥔 것이다. 최경주도 한국에서부터 여러 경기를 휩쓸었다.

강성훈은 무명의 골퍼다. PGA에 발을 들여놓은 지 8년 만에 우승을 했다는 것은 그가 프로생활을 하면서 겪었을 어려움을 짐작케 한다. 프로골퍼 세계에는 ‘Monday Player’라는 용어가 있다. 골프대회마다 쫓아다니는 데 예선을 통과 못해 월요일 하루만 플레이를 하고 다음 경기장에서 대기하고 있는 돈 없고 고달픈 프로들을 의미한다.

강성훈은 인터뷰에서 자신이 경기부진으로 2013년부터 3년간 겪은 고충을 털어놓았다. 예선 커트라인을 통과 못해 짐을 싸고 다음 경기장으로 간적이 수없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는 한때 2류 투어인 웹닷컴에서 뛰었다. 그러나 강성훈은 꿈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꿈은 “나도 타이거 우즈처럼 되어 보겠다”는 희망이었다. 그는 이와 같은 꿈이 없었으면 경기부진에 스스로 실망해 프로 생활을 포기했을 것이라고 회고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잠재력을 갖고 태어난다. 그러나 이 잠재력은 그가 꿈을 가졌느냐 못 가졌느냐에 따라 열매가 달라진다. 꿈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꿈조차 갖지 않고 살다가 죽는 인생이 문제다.

강성훈의 승리는 꿈을 가진 사람과 꿈을 못 가진 사람의 차이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교훈적이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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