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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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와 노인

2019-06-12 (수)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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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을 받은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미국문단의 긍지다. 그가 거주하던 키웨스트에 가보면 헤밍웨이가 살던 집이 박물관으로 보존되어 있고 헤밍웨이가 키우던 고양이의 자손 수십 마리가 아직도 이 집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헤밍웨이의 명성에 비하면 그저 그런 정도의 박물관이다.

그런데 쿠바의 아바나를 관광할라치면 다운타운 여기저기에 헤밍웨이를 소개하는 박물관과 호텔, 바, 레스토랑 - 심지어 헤밍웨이 칵테일까지 있는 것에 놀라게 된다. 헤밍웨이가 5년 동안이나 머물렀다는 아바나 올드타운의 ‘호텔 암보스 문도스’의 511호실은 쿠바 방문객들의 필수 관광코스로 되어있다.

쿠바국민들은 왜 헤밍웨이를 이처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을까. 노벨상을 받은 ‘노인과 바다’를 헤밍웨이가 아바나 ‘호텔 암보스 문도스’에 머물면서 썼고 소설의 배경이 쿠바 앞바다인데다가 주인공인 노인 산티아고가 쿠바인이라는 것이다.


헤밍웨이는 자신이 늙는다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고 노인취급을 당하는 것을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킬리만자로 등 아프리카를 돌아다니며 사냥을 하고 카리브해에서 며칠씩 파도와 싸우며 대어낚시에 열중하기도 했다. 그는 경비행기 사고로 세 번이나 죽을 뻔했다.

그의 일생은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처럼 도전과 모험의 연속이었다. ‘노인과 바다’에서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대어를 낚는 데는 성공하지만 상어공격으로 그 대어를 육지로 끌고 오는 데는 실패한다. 뼈대만 남은 물고기를 끌고 오게 되었지만 산티아고 노인은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정복될 수는 없다”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헤밍웨이는 늙은 어부 산티아고의 입을 통해 자신은 다른 사람들처럼 목숨만 유지하는 노인생활은 하지 않을 것이고 끝까지 용기와 도전을 통해 남성적 가치를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정신과 육체는 서로 다른 속도로 쇠퇴한다. 정신은 젊은이지만 육체는 급속도로 노화된다. 나이 들어 거울을 들여다보면 ‘이게 정말 나인가“ 의심되는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헤밍웨이는 비행기 추락사로 입은 부상이 악화되어 글을 쓰기 어려워지고 침대에 들어눕게 되자 총으로 자살해 버렸다. 그의 나이 불과 62세였다.

요즘 헤밍웨이 탄생 120주년을 맞아 그의 자살원인이 무엇인가가 재조명되고 있는데 우울증 때문이라고 말하는 학자들이 많다. 헤밍웨이는 말년에 가장 친한 친구 윌리엄 예이츠, 스콧 피츠제럴드, 제임스 조이스, 특히 자기 저서의 편집자로 낚시와 사냥을 함께하던 맥스 퍼킨스를 잃은데 대한 슬픔이 지나쳐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젊었을 때는 여성을 좋아했지만 나이 들어서는 남자친구들에게 더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친구들도 하나 둘 세상을 떠나기 때문에 결국 외톨이가 되기 마련이다. 나이 들면 새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데 이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함께 고민하는 친구가 없다면 누구든 고독의 만년을 보낼 각오를 해야 한다.

돈과 건강을 가졌다고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인의 행복의 요소는 돈과 건강이라고 생각하지만 노인에게는 친구가 돈과 건강 못지않은 행복의 요소다. 우리는 지금껏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출세하는 법, 돈 버는 법에만 열중하고 친구 사귀는 법은 등한시했다.

친구는 배우자와는 또 다른 인생 반려자다. 배우자에게 의논할 수 없는 이야기가 너무나 많은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어려움에 뜨거운 눈물 한 방울 흘려줄 수 있는 참다운 친구가 한명이라도 있다면 당신의 노년인생은 성공한 셈이다. 괴테가 그렇게 말했다.

인생말년에 행복해지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재테크보다 우(友) 테크를 공부하시라.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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