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절벽에 선 한국외교

2019-05-29 (수)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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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는 세계 최대의 통신장비업체로 알리바바를 능가하는 중국 제일의 재벌이다. 화웨이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5G 기술의 표준이 될 것이라는 예측과 함께 통신장비의 글로벌 패권을 거머쥘 것처럼 승승장구의 길을 달려왔다.

그런데 화웨이 런정페이 회장의 딸이자 재무담당책임자(CFO)인 멍완저우 부회장이 지난해 12월 미국의 요청으로 캐나다에서 체포되어 수억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겨우 풀려났으나 전자팔찌를 차고 있는 초라한 신세가 되었다. 이유는 멍완저우 부회장이 홍콩에 차린 화웨이가 대이란 제재법을 위반한 것으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중국의 유명회사들이 대부분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일어났으나 화웨이는 다르다. 창업주인 런정페이는 처음부터 수출에만 전력을 쏟아 30년이 지난 후 통신장비업계에서 세계 제일의 위치로 올라 이른바 ‘런정페이 제국’을 건설하는데 성공했다. 문제는 미국이 ‘화웨이’를 단순한 민간기업으로 보지않는다는 점이다. 2012년 10월 미국 하원 정보위원회에서 작성된 보고서에 따르면 화웨이는 “자발적으로 중국정부와 공산당의 지령에 따라 기밀을 훔치고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며 미국의 적성국과 수상한 거래까지 하는 기업”으로 설명되고 있다.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화웨이 제품을 보이콧 해줄 것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호주와 뉴질랜드가 제일 먼저 미국의 요청을 수락, 화웨이 제품을 거절했으며 이어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이 합세했다. 미국은 한국도 화웨이 보이콧 대열에 참여해줄 것을 요청해 왔다. 그러자 중국은 7월로 예정되었던 시진핑 주석의 방한계획을 취소한다고 통보해 왔다. 사드 후폭풍을 겪은 한국으로서는 참으로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롯데가 중국에서 어떻게 밀려났는지를 생생하게 목격한 한국기업들은 공포에 떨고 있다.

게다가 화웨이 고위 임원들은 엊그제 한국을 방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을 직접 찾아다니며 화웨이 제품을 계속 써달라고 사정하고 있다. 화웨이는 한국 ICT 기업의 우수고객이기도 하다. 지난해 한국에서 사들인 반도체 등 부품은 한화로 12조원이 넘는다. 삼성은 어제 화웨이의 물건을 계속 쓰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요구를 정식으로 거절한 셈이다.

미중 무역전쟁에서 한국은 어느 편에 서든 큰 상처를 입게 되어있다. 일본은 자국을 방문한 트럼프를 수모씨름대회까지 관광시키며 아양을 떨고 있는데 한국의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미국방문에서 트럼프와 겨우 2분간 대화를 나누었을 뿐이다. 미·일은 밀월인데 한국은 점점 국제무대에서 외톨이 신세가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20세기에 미소의 군비경쟁 - 냉전이 있었다.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미국이 승리했다. 미중 무역전쟁은 21세기의 신냉전으로 불리 운다. 언제까지 계속될 것이며 누가 이길 것인가. 일본도 80년대에 미국의 자동차시장과 부동산시장을 휩쓰는 등 미일 무역전쟁에서 완전히 미국을 제압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가. 미국이 일본상품을 보이콧하기 시작하자 일본경제는 지난 20년 동안 침체에 침체를 거듭했다. 아무리 돈이 있어도 미국과 유럽시장을 장악하지 못하면 경제파탄이 온다는 것을 일본이 비싼 대가를 치르고 배운 것이다.

중국은 좀 다르다. 일본과 달리 엄청나게 큰 내수시장을 갖고 있다. 미국이 압력을 가해도 국내시장으로만 상당한 기간 견딜 수가 있다. 미중 양국은 이번 무역전쟁에서 밀리면 죽는다는 각오로 싸우고 있다. 한국외교가 절벽에 서있다. 앞에는 호랑이, 뒤에는 사자가 으르렁대고 있는 모양새다. 어디로 갈 것인가. 한국외교가 건국 이래 최대의 시련기를 맞고 있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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