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지진키트를 다시한번 살펴보며

2016-05-18 (수) 03:09:20 마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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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일본에서 또 한번의 큰 지진이 있었다. 지진에서 무관하지 않은 지역에 살고 있는 만큼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곤 한다. 오늘 유명을 달리한 사람, 혹은 살 터전을 잃고 먹을 것이 부족해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제, 아니 바로 10분전까지는 우리와 똑같이 평온한 일상을 살던 사람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도 10분 후에 그런 일을 겪을 수 있구나 생각하니 아찔하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지진키트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이 지진키트도 2011년 일본 대지진이 있고 난 후 긴급히 장만했다 2014년 나파밸리 지진이 난 후에 정비했으니 2년동안 방치해 둔 것이다.

그 안에는 이미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스무디, 젤리, 과자 등도 있다. 반드시 200불의 현금을 넣어두라는 친구의 말도 잊은 채 현금을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바람에 40불 남아있다.


이곳에서 자라 지진 교육을 받은 친구의 말이 현금과 신발을 반드시 준비해 두라고 했다. 신발을 신지 않고 사는 한국인이라면 신발은 항상 침대 근처에 놓아 두어야 한다. 신발을 챙기고 지진키트를 열어 물, 아이에게 필요한 스낵, 그리고 현금, 담요를 접어 넣었다.

그리고 하나 더 추가하였다. 가족 사진과 그 뒤에 한국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연락처를 적어서 넣었다. 만의 하나 어른들이 사고를 당하고 아이들만 남았을 경우를 생각하여. 내가 미국에 이민 오기 전, 남편이 혼자 샌프란시스코에 미리 정착을 했었다.

아토피 피부염으로 고생을 하는 남편은 술도 마실 수가 없고,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이 여간 곤욕이 아닐 수 없어 이곳의 날씨와 공기가 피부에도 좋다며 공부를 마치고 베이지역에 정착한 것이 2007년 여름이다. 그리고 2007년 가을 쯤에 이곳 베이지역에 강도 5의 지진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평생 지진을 경험해 보지 못한 남편은 찻잔 부딪치는 소리에 도둑이 들어온지 알고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고 한다. 그때 나는 남편에게 전화해서 “쓰레기차 피하려다 똥차 만나는 격이지.

공해랑 술 무섭다고 미국서 살다 지진 만나네”라고 했다. 하지만 이 또한 얼마나 오만한 말인가? 최근까지 기록에 없던 지역에 새로운 지진대가 발견되고 있다고 하니 지구상 어디를 안전지역이라 장담할 수 있을까? 어디에 살건 오늘 하루에 감사하며 겸손히 또 열심히 살아야 함을 깨닫는다.

<마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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