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숨비소리

2024-04-2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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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라/버클리 문학회원

문득, 와락 다가오는 머언 하늘 내음에 코끝이 찡하다.

‘아, 유난히 파아란 하늘에 백옥 같이 뽀오얀 새털 구름에 바람이 분다 향기가 난다 추억의 향기다’.

얼마 전 쓰기 시작 했던‘ 여성의 창 ’이 벌써 3개월이 되어 이 글이 이 봄에 빗어낸 내 끝자락 ‘숨비소리’ 라니.


고국을 떠나 내 부모 형제가 50여년을 살고 있는 이곳 미국 땅으로 어린 두 아들과 함께 우리 4가족이 이민을 와서 살아 온지도 어언 2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초중생이었던 철없던 두 아들은 나름 성실하고 건실한 사회인이 되었고 반면 우리 칠남매 무엇이든지 이해와 사랑으로 감싸주시고 품어 주시던 천사표 우리 엄마, 이제는 머언 하늘나라의 별이 되신지 벌써 두해가 넘었다.

많이도 미워했고 때로는 부녀지간 이였지만 애증의 관계 이기도 했던 독불장군 우리 아버지도 이제는 애뜻한 그리움만 남기시고 먼 하늘 나라로 떠나신 지 오래 전.

지지고 볶고 울었다 웃었다 우리 칠남매, 형제자매가 많다 보니 일도 많고 탈도 많아서 좋은 일에는 두배 세배 기뻤고 때로는 예기치 않게 미워할 때는 ‘형제가 왜? 자매인데 왜?’ 하며 몇배 섭섭해 하면서 지내온 많은 세월.

이제는 ‘우리가 누군가’ 미우나 고우나 한 형제 자매 임에 더 애뜻하고 끈끈한 애정으로 서로를 감싸며 살고 있다.

특별히 나는 뇌출혈로 두번이나 쓰러져 두번의 생사를 오가는 대 수술을 하였고 수술 후유증으로 지금은 오른쪽 손과발 반쪽이 마비되는 반신 마비 장애를 지니고 살아 온지도 8년이 되었다.

그동안 가족은 물론 가까운 지인들이나 친구들의 보살핌과 사랑을 어떻게 하나하나 나열할수 있을 지.


두 아들의 엄마로써 많이 부족하고 어설펐지만 나름 당당하게 잘 커준 두 아들에게 고맙고 밤낮으로 병원이나 나의 모든 일상을 도와 주고 지금까지 함께 해준 내 짝궁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하고 싶다. 무한 최고의 내 동반자임에 ‘엄지 척!’

처음 미국에 왔을 때에는 조금 더 젊었을때 왔었으면 좋았을걸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만 해도 많이 젊었을 때였다.

우리는 ‘조금만 빨랐더라면’ 하며 조금은 늦지 않았나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조금만 달랐더라면’ 지난일을 아쉬워 하며 살아 간다. 그러나 지금도 충분히 늦지 않았을 때 임을 시간이 또 다시 지나고 나중에서야 알게된다. 늘 아쉬움이 많은 것이 우리들의 삶이 아닌가 싶다.

세상이 급변하는 초고속 시대에 지구는 하나라는 범 인류를 살고있는 오늘날의 우리들,
그러나 지역간 나라사이 다른 언어의 장벽, 서로 다른 문화의 차이, 각각의 추구점이 다른 이민자 끼리의 삶의 방식에서 오는 견해의 차이, 서로 다른 종교나 정치 성향으로 상대를 증오하거나 미워하게 되는 수없이 변화 물상한 이 세상에서도 우리는 용감하게 잘 살아 가고있다.

먼 타국에 와 살면서 남들보다 몇배는 긴장했던 우리 이민자들의 삶, 결국 누가 잘 살았다 못 살았다고 할수 있을까?

우리는 불과 얼마 전 까지도 보이지도 않는 코로나19이라는 세균으로 온 인류가 속수무책 죽음의 공포에서 벌벌 떨지 않았는 가. 잘나고 못나고 모든 인류에 인간이면 똑같이 두려워 했던 “죽음!”

그렇다.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간 코로나! 그래서 이 ‘여성의 창’은 내 인생 가는 길목에 내 쉬는 ‘숨비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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