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AI픽] 트럼프 “미국 AI 쓰라”…국산 AI 주권 시험대에

2025-07-26 (토) 03: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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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정부 ‘AI 수출 패키지’ 본격화에 업계·당국 긴장

▶ AI 패권 경쟁 속 한국 독자 AI 모델·NPU 전략에 타격 우려

[AI픽] 트럼프 “미국 AI 쓰라”…국산 AI 주권 시험대에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AI 행동 계획’ 관련 행정 명령 [로이터]

트럼프 정부가 자국의 인공지능(AI) 모델과 인프라를 동맹국에 수출하겠다며 AI 패권 전쟁에서 유일한 대적 상대인 중국 포위 전술을 시작했다.

고성능 반도체 수출을 틀어막으며 중국의 AI 굴기를 견제했지만, 중국이 자체 반도체를 토대로 눈부신 기술 개발을 이어가자 글로벌 AI 생태계에서 중국 고립시키기로 작전을 바꾼 것으로 해석된다.

우방국들에 미국산 반도체, 서버, AI 모델, 소프트웨어 및 기술 표준을 포괄하는 'AI 풀스택(full-stack) 수출 패키지'를 쓰라는 압박이 강해질 것으로 보여 새 정부 출범 이후 '소버린 AI'를 강조 중인 우리나라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 쌀·소고기 대신 AI 내줘야 할까…AI 업계 긴장

아직은 미국의 AI 풀스택 수출 패키지 장려책이 어느 정도 수준일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래픽처리장치(GPU)로 대표되는 AI 인프라와 AI 모델을 미국산을 쓸 것을 동맹국들에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관세 협상에서 미국 AI를 쓰는 조건을 내밀지 않을지 우려하기도 한다.

지금은 AI 모델 학습에 필수적인 엔비디아 GPU가 없어서 못 사는 상황이어서 자국 반도체를 사서 쓰라는 미국의 통상 압박이 의미가 없게 느껴질 수 있지만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AI 학습에서 GPU를 대체하는 반도체 신기술이 등장한다거나 AI 모델 개발이 일정 정도 수준에 도달해 학습보다 AI를 실제 적용하는 서비스가 더 중요해지면 미국산 AI 하드웨어를 고집할 이유가 없어질 수 있어서다.

트럼프 정부의 AI 풀스택 수출 정책은 특히 AI 학습에서는 GPU에 대적할 수 없지만 추론 및 온디바이스 AI 등 AI 서비스 영역에서 강점을 지니는 신경망처리장치(NPU) 기반 국내 AI 스타트업에 위기 요소가 될 수 있다.

이제 막 생태계에 씨앗을 뿌리고 있는 국내 AI 반도체에 정부가 다양한 정책 지원을 펼치며 생태계를 키우려는 '마중물' 정책을 펴고 있는데 미국이 보조금 성격으로 규정하고 통상 문제를 거론할 수 있기 때문이다.


AI 반도체 설계기업(팹리스) 리벨리온 박성현 대표는 "NPU와 같은 AI 추론용 인프라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단일한 빅테크 인프라가 아닌 이기종(Heterogeneous) 인프라 구축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는 국가 단위에서 AI 역량을 자립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과도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중국 딥시크가 AI 서비스로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GPU뿐 아니라 화웨이 NPU, 클라우드, 보안 등 AI 컴퓨팅 인프라가 갖춰졌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도 'AI 주권' 확보에서 참고할 점이라고 강조했다.

◇ '소버린 AI' 강조에 부상한 '프롬 스크래치' 개발…유효할까

정부가 국가대표 AI 기업을 뽑아 전폭 지원하겠다며 진행 중인 '독자적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사업이 본격화되자 여기에 참가한 다수의 기업이 강조하고 나선 것이 '프롬 스크래치' 개발 방식이다.

'처음부터, 스스로'라는 말뜻대로 데이터를 넣어 AI를 학습시키고 모델로 고도화하는 전 과정을 직접 했다는 점을 SKT·KT·트릴리온랩스 등이 최근 강조하고 나섰다.

정부가 소버린 AI에 방점을 찍자 기술 주권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내세우기 위한 방편으로 풀이됐다.

홍보가 과열되며 프롬 스크래치 방식을 표방하는 일부 회사가 독자적 기술이 아닌 해외 AI 모델을 바탕으로 개발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 AI 업계 관계자는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투입되는 프롬 스크래치 방식을 실제로 쓴 우리나라 AI 모델은 네이버 하이퍼클로바나 LG 엑사원 정도"라고 말했다.

AI 모델 개발을 독자적으로 했느냐 아니냐를 떠나 프롬 스크래치 방식을 강조하는 것이 AI 전략에서 현명한 것인지에 대한 회의도 나온다.

오픈소스로 공개된 해외 AI 모델을 기초로 쓰되 '깊이 확장 스케일링'(DUS) 방식 등으로 고도화한 경우 프롬 스크래치는 아니어도 기술 주권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업계 관계자는 "이 경우 이미 공개된 모델을 썼기 때문에 해외 AI 개발사가 모델 이용료를 올린다거나 사용 허가를 중단한다거나 하는 간섭 문제에서 자유롭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정부의 AI 풀스택 수출 패키지 정책까지 공개되자 처음부터 '한 땀 한 땀' AI 모델을 개발한 것에 주목하기보다 해외 모델을 유연하게 활용하되 인공지능 전환(AX)에서 기술 주권을 놓지 않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온다.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KOSA)의 '미국 AI 행동 계획에 따른 우리나라 영향' 검토 보고서도 오픈소스 AI 모델 확산에 따라 한국 스타트업들이 저비용으로 첨단 AI 기술을 활용할 수 있어 기술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다만 "핵심 AI 모델과 플랫폼이 미국 중심으로 구축되면 한국 스타트업들은 이러한 구조 위에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하위 공급자 역할에 머물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한편, 미국이 새 AI 전략을 공표하며 강한 드라이브를 거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관련 논의를 가속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임문영 더불어민주당 디지털특별위원장은 지난 24일 서울 서초구에서 열린 매경이코노미 주최 AX 대전환 포럼에서 "국제 질서가 바뀌는 상황에서 경제 안보나 국가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바라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오픈AI 샘 올트먼 등 기술 혁신과 AI 투자에 대해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는 기업인들이 많은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라며 국내 기업계가 AI 혁신과 투자를 둘러싼 담론 형성에 동참하기를 촉구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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