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흔히 쓰는‘3포세대’라는 말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젊은 층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결혼과 출산은 경험이 없기에 아득히 먼 일처럼 느껴지지만 연애를 사치로 여기는 20대의 연애 소식은 손톱 밑 가시처럼 마음을 쿡쿡 찌른다. 학생이라는 이유로, 또는 취업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 감정을 꾹꾹 억누르는 사례는 비단 노량진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체 우리는 언제부터 우리 내면의 가장 인간다운 감정인 사랑을 포기하며 살아가게 된 것일까?
나 역시 뒤늦게 유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결코 연애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었기에, 그 결의에 찬 마음과 절실함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러한 결심이 필요했던 이유는 유학생들도 한국 대학생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입시 경쟁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부담감이 줄어들기보다는 오히려 떠나온 거리 만큼이나 지탱하고 있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숨만 내쉬어도 지출되는 생활비가 유학 온 목적을 상기하며 끊임없이 압박하기 때문이다.
지난 시간 연애에 관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감정 소모와 학업 간의 균형을 위해서 내가 선택한 방법이 있다. 감정 앞에서, 시간 속에서, 스스로에게 당당해지는 연애였다. 그 신호탄으로, 부모님에게 연애 시작을 알렸다. 제재와 감시가 어렵기에 연애 사실이 비밀로 유지되는 주변 사람들과 달리 부모님과 대화를 통해 신뢰를 쌓고 내 선택을 지지받고자 했다. 내 편인 부모님조차 이해 시킬 수 없다면 오늘의 선택을 평가할 다른 사람은 어떻게 설득할 것 인가?
유학생이 연애를 조심스러워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시민권자 자녀를 둔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가 언제 떠나게 될지 모르는 유학생과 교제하지 않기를 내심 바라는데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처럼 환경의 변화에 의해 헤어지는 연인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주변 사람들의 우려 속에서 연애를 하며 터득한 것은 내 선택에 따른 시간을 책임지는 법이었다. 첫 장거리 연애는 서툴렀다. 낮과 밤이 바뀌기 일쑤였고 쉽게 풀어질 문제인데 감정의 골이 깊어지기도 했다. 이제는 제법 기다림도 내 시간으로 쓸 줄 알게 되었다. 하루를 공유하기 위해 영상을 제작하고, 포토샵 편집 기능을 익히고, 상대방을 위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던 것들이 소소한 취미로 이어지고 자기계발의 동기로 발전했다.
선물에 대한 관점 역시 바뀌어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것을 충분히 활용하며 현재에 집중하고자 했다. 무엇보다도 더 많은 이해와 인내가 요구되는 장거리 연애를 통해 어떤 문제도 배움의 기회로 삼는 태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연애를 하기에 완벽한 시기가 과연 있을까? 그 시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는 정신력과 유연함을 연습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며 부단히 애썼다.
시간이 다르고 거리가 멀어도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가치를 두며 나다움을 잃지 않도록 서로를 치켜주었기 때문이다. 가식과 예의 사이를 아슬아슬 줄타기하는 사회 속에서 의기소침해질 때 사랑은 보이지 않는 사탕처럼 끝을 알 수 없는 달콤함을 선사한다. 피카소는 사랑을 삶의 최대 청량제이자, 강장제라고 정의했다. 나다울 수 있도록 자신감을 불어주는 연인이 있기에 깡으로 일어나서 당당히 걸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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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