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유방암과의 산책(1)
2016-03-29 (화) 04:07:52
이혜은
난 유방암 생존자다. 가슴에 뭔가가 만져진다고 하니 엄마가 방사선과를 데리고 갔다. 그런데 메모그램(Mammogram)에서는 암이 발견되지 않았다. 초음파 검진에서는 5 개 종양이 보이는데 가장 큰 것이 1.2 센치였다. 의사는 책과 비교해 주며 암은 공격성이 있어 뾰족한데 초음파에 나타난 나의 종양은 부드러워 악성종양이 아닐 것 같지만 1주일내 대학병원에서 검진받아볼 것을 권유했다. 엄마가 대학병원에 같이 가자며 재촉했지만 난 하루를 병원가는 데 허비하기가 싫어서 그냥 바쁘게 지냈다.
그러다 4개월째 되는 날, 가슴에 작은 통증이 느껴졌다. 엄마가 펄쩍 뛰며 날 끌고 큰 대학병원에 가셨다. 그때 엄마의 힘이얼마나 셌는지...이기지 못해 따라갔다. 의사가 팔을 들어 보라고 하는데 유두가 함께 올라가지 않았다. 내가 유두함몰이네요? 하고 물으니 의사가 그런 전문용어를 어찌 아는지 신기해 하셨다. 그리고 조직검사(Fine needle biopsy)를 받았다. 검사결과를 알려주기 위해 멀찍이 걸어오는 의사의 낯빛을 보고 순간적으로 내가 암에 걸렸음을 알아차렸다.
그런데 의사가 암을 선고하는 순간 나는 암울하거나 심각하기보다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지금도 감사한데 더 좋은 것을 주시려나?” “내가 지금 조금 피곤하니까 쉼을 주시나 보다” “앞으로 더 건강에 신경쓰라는 경고”라는 생각이 앞섰다. 엄마는 그때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내 모습에 소름이 끼치더라 하셨다.
그리고 그날 바로 입원했다. 병실에 들어가니 간호사들이 환자가 어디 있냐고 물었다. 내가 환자라고 하니까 무슨 환자가그렇게 웃으면서 들어오느냐고 의아해했다. 침대에 누우니 이런 편한 세상도 있구나 하며 실컷 잤다.
중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 내가 사람들을 잘 웃긴다면서 코미디언이 되면 성공할 거란 얘기를 하곤 했다. 지금도 가끔 그 길로 갔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어쨌든 엘리자 베스 로스의 죽음의 5 단계 과정을 거치는 것을 알고 있는 나 자신도 스스로 놀란 경험이었다. 그녀의 이론에 의하면 죽음이나 상실을 경험할 때 우리는 처음에는 부정하고, 분노를 내고, 현실을 받아들이며 타협하고, 극도의 우울을 경험하며, 마지막으로 받아들이는 수용의 단계를 거친다. 나는 투병생활동안 질병과 함께 할 나의 여정이 기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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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