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해선 칼럼] 어느 일월의 열 이레

2016-02-23 (화) 04: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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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외우라고 배급된 단어중에 decrepitude 라는게 있다. 동물이건 식물이건 흐르는 세월과 함께 살아지는 그런 뜻, 한마디로 말하자면 노후, 노쇠 뭐 그런 뜻 같다. 몇 번 외우다 까먹다 이렇게 반복을 오래 하다 보니 이제는 내 것이 된 듯 하다. 그래서 ‘빙고’ 하고 오늘저녁 복권이나 하나 살까 한다.

Decrepitude. 근래 미국 민주주의가 이짝인 것 같다. 코끼리도 비실대고 당나귀도 바로 그 거시기를 잃은 것 같다.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누가 당선될지는 모르지만 그 자리를 갖겠다고 쟁쟁한 어른들이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모습이 때로는 처량해 보인다. 코끼리당에서는 16명이 북치고 장구 치더니 이제는 5명으로 줄었다. 아마 3월초 수퍼 화요일이 지나면 최소한 한명 어쩌면 두 명이 또 수건을 던질 거다. 인신공격을 포함한 싸움의 농도도 짙어간다.

당나귀 쪽은 어떤가? 일인 신부에 두 사람 들러리인줄 알았는데, 웬걸, 들러리 하나가 알고 보니 들러리가 아니다. 그러자 남은 들러리가 혼자서는 재미없다고 ‘Quit’ 한다. 그러니 신부가 갑자기 두 명이 된다. 이런 소용들이 속에서 또 다른 폭풍우가 몰아친다. 미연방 대법원 정치 지형도가 4대4로 팽팽히 맞붙게 된다. 보수성 스칼리아 판사의 뜻밖의 죽음이 5대4의 아슬아슬했던 보수성 다수에 변수가 온 거다. 이민법, 오바마케어 등 미국의 앞날을 가름하는 많은 법의 운명이 새로 취임하는 판사의 결정에 따르게 된다.


포효가 울린다. 코끼리 캠프에서다. 밋치 맥카노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가 백악관에 경고한다. 오바마가 지명하는 대법원 판사 상원 신임은 절대 없을 거라고, 그러니 지명은 다음 대통령에게 양보하라고. ‘노웨이 호세’다. 백악관 대답은 웃기지 말라고 일축 하면서 몇 주내로 후보자를 지명할거라고 발표한다. 공석인 대법원 판사의 지명은 대통령의 특권이자 대통령의 의무다. 미국 헌법에 명시되어있는 사항이다. 누가 옆에서 하라마라 하는 그런 사항이 아니다. 대법원 판사지명 스파링 라운드 제1에서는 공화당 패배로 보인다. 주검의 애도보다 정쟁이 판친다.

일종 꽃놀이패라고 할까. 오바마 대통령의 바둑에는 로레타 린치 미법무장관이 있다. 흑인 여성이다. 루시 고 판사도 물망에 오른다. 이밖에 월남계 여성판사등 많은 패가 있다. 그러나 공화당패도 건들면 터지는 풍선만은 아니다. 지명자의 오케이/노 를 결정하는 다수당이라는 패를 들고 있다. 54대44 에 무소속 2명. 무소속 버니 샌더스가 민주당 후보로 나오는 거를 보듯 무소속 두 명은 민주당과 논다. 그러니까 54대 46의 공화당 다수는 4표차다.

그런데---금년 선거에 34개 상원 의석(Class 3)이 재선에 오른다. 현재 그중 의자 10개는 민주당, 그리고 24개는 공화당이 쓰고 있다.

그래서---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현재 의석보다 최소 4개만 추가한다면 아주 재미있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대법원 판사 문제로 공화당이 삐끗하면 의석을 잃을 수도 있다.

새로 선출된 금배지는 2017년 1월3일 등원한다. 그런데 물러나는 대통령은 이보다 17일 뒤인 1월20일 백악관 뒷문을 통해 아디오스다. 운명의 17일이다. 상원 50대50 동점은 헌법에 의해서 조 바이든 부통령이 51번째 결정적 역할을 행사한다.

떠나는 대통령과 새로 오는 상원의원들이 마음대로 엿도 팔고 깽판도 칠 수 있다. 새로 오는 대통령이 설사 공화당이래도 이 운명의 17일간만은 백악관 정문 앞에서 발을 구르며 서성댈 뿐 속수무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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